조선호 감독 ‘청설’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조선호 감독 ‘청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사투리마냥 영화 ‘청설’에서는 수화가 중심수단이다. 배우들이 수화를 얼마나열심히 배웠는지는 화면이 말해준다. 수화는 손을 사용하지만 눈을 들여다보고 표정을 보며 소통하는 것은 물론 볼로도 말하고 있었다. 볼통하게 입바람을 넣었다 푸우하면서 다채롭게 표현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듯 국제수화가 따로있어 공부해야 한다는 것 또한 생각해보면 당연한데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수화를 타고 조용히 흘러가는 영상은 소음을 소거한 채 자연의 소리만을 담거나 BGM이 흐르는 가운데 눈 맑은 배우들의 소통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다.
용준(배우 홍경)은 꿈이 아직 없다. 2030 대부분의 청춘이 그렇듯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일도 없다. 빈 칸 많은 이력서를 보는 게 일상이 된 그는 엄마(배우 정혜영 분)의 잔소리에 못 이겨 부모님이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 일을 돕는다. 도시락 배달처이던 수영장에서 용준은 완벽한 이상형인 여름(배우 노윤서)과 맞닥뜨린다. 그는 배낭여행을 목표로 배워둔 수어를 통해 청각장애인 수영선수이자 여름의 동생인 가을(배우 김민주)에게 다가간다. 동생이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만이 목표였던여름은 용준으로 인해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가을은 용준으로 인해 변화하는 여름을 보며 두 사람을 응원한다. 그러나 여름은 용준을 밀어내려 하고 두 사람의 오해는 깊어진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기 위한 이면에는 그들이 풀어야 할 각자의 몫이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5감각 중 청각을 사용하지 못하면 소리를 낼 방법을 모르게 된다. 청각 장애인이 내는 웃음소리나 울음소리는 아마 자연스럽게 격해지는 행동 반사음일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신문기사에서 ‘판결이 나자 방청석에서는 농아인들의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이 온 법정을…’이라는 대목을 보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서 소설‘도가니’를 쓰기 시작했노라 했다. 영화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장애로 보지 않고 차이를 두지 않은 채 바라본다. 감정도 행동도 그늘 속에 움츠러들지 않도록 밝고 맑게 그리고 일상처럼 그리고 있다. 진정한 장애는 차이를 두고 바라보는 편견의 시각에 있다는 듯이.
영화 ‘청설’은 지난 2010년 국내 개봉했던 동명의 대만 영화 ‘聽說; Hear me’(2009)이 원작이다. 청춘 로맨스 장르로서 당시 붐을 일으켰던 대만 영화를 2024년형 한국판 ‘청설’로 재탄생하기에는 감독의 각색 노력이 있었다. 시대적 2030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유기화하면서 공감 포인트를 끌어낸 노력 그리고 감독이 주력했던 ‘장애인을 장애로 바라보는 시각을 버리고 차별이나 혐오 없이 마주하고 일상적으로 대한’ 무해함으로 공감영역을 넓힌 노력이 있었다.
태생적으로 다른 영화보다 음소거 표현방식에서 어려움이 많아 보이지만 그렇다 해서 부족하거나 모자람 없이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배우들의 수어 동작과 눈빛, 표정 연기 등 배우들의 노력 또한 아우러져 빛을 발하는 영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20대 배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함을 안겨준다. 거기에 연기에 대한 노력이 더해져 눈빛만으로도 관객의 감정을 파고든다. 용준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느끼는 설렘, 기대, 아픔이 객석에 생생히 스며들어 어느새 용준에게 설득당하고 마는 것이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이들의 부모들이 부여하는 선한 아우라 등 배역간의 유기적 화학반응이 보다 크게 느껴진다. 기-승-전-결의 후반부가 엔딩을 서서히 끌어내지는 않고 있다. 조용히 흘러가던 흐름이 갑자기 급류를 타기보다는 맑은 흐름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은 객석의 흐름을 좀더 배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 ‘청설’이 주는 여운이 깊다. 로맨스 장르로서의 영화적 감성 문법과 함께 감독의 고운 결이 느껴진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