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5·18민주유공자 故 '이강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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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5·18민주유공자 故 '이강하' 화백
1980년 5월 조선대 미술교육과 학생||걸개그림 그리는 등 시민군으로 활동
  • 입력 : 2022. 05.02(월) 17:18
  • 정성현 기자
고 이강하 화백.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소장 김범태)는 5월 이달의 5·18민주유공자로 화가 고 이강하 씨를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1980년 5월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고인은 당시 계엄군에 구타당하는 시민들을 목격하고 항쟁에 참여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기간 걸개그림을 그리는 등 시민군으로 활동한 전력으로 영암경찰서에 연행돼 상무대로 이송됐다.

고인은 상무대에서 각목 등으로 온몸을 구타당하는 등 수모를 겪고 귀가했으나, 이후에도 지명수배 돼 2년여 동안 은둔 생활을 하며 감시 눈초리를 피해 다녔다.

또 영암이 고향이었던 고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목포와 해남의 무기고를 털어 시민군에 무기를 조달했는데, 이 전력이 문제가 돼 1986년 '특수강도 등'의 죄목으로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고인은 광주에 머물면서 무등산과 영산강, 가족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갖은 고초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를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1981년 목판화 작품 '자화상'에 담아내기도 했다.

1995년 공개된 12m 길이의 대작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는 무등산에서 시작된 비단길이 금강산, 백두산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고인의 마음을 담았으며 "광주를 넘어 민주주의, 평화, 자유를 열망하는 전세계인의 갈망을 화폭에 담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평소 1980년 5월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민중미술작가'라고 말하는 것을 죄스러워 했던 고인은 직장암 판정을 받고 5년 동안 투병생활 끝에 지난 2008년 숨졌다.

유족들은 고인의 작품을 기증해 지난 2018년 남구 양림동에 이강하미술관을 개관했다.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관계자는 "이달의 5·18민주유공자 고 이강하 열사는 제1묘역 6-28번에 잠들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는 5·18민주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과 공헌을 재조명하여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대내외에 홍보하고자 매달 이달의 5·18민주유공자를 선정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