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09일(일) 13:36 |
지난 1994년 광주시와 일신방직이 임동 공장부지를 이전(2월 3일자 1·3면, 6일자 1면)하기로 한 협약서를 체결할 당시 광주시 고위관계자가 24년간 감춰졌던 협약 무산의 전말을 본보에 전했다.
당시 협약은 일신방직과 전남방직 두 공장을 모두 평동공단으로 이전하는 대신 공장부지를 아파트 등으로 개발할 수 있는 '특혜성 조건'을 전제로 맺어졌다. 고위관계자의 증언에는 '특혜성 시비', '개발수익 악화'를 우려한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공장 이전을 '없던 일로 하자'는 물밑협상의 정황도 담겼다.
전 광주시 고위관계자 A씨는 6일 본보와 인터뷰를 통해 "지난 2004~2005년께 일신방직 고위 관계자로부터 10년 전과 달리 상황이 변했으니 임동 공장을 이전하기로 한 협약을 없던 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광주시 측에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전달했다"고 말했다. A씨는 1994년 광주시와 일신·전남방직 간 '임동 공장 이전 협약'을 맡았던 광주시 고위관계자다.
A씨 말을 종합하면 당시 협약은 각사 임동 공장의 평동산단 이전이 전제다. A씨는 "당시 경기가 안 좋아 평동산단 조성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전체 부지의 60~75% 상당은 분양을 마쳐야 한다는 광주시의 계산이 있었다. 그런데 광주지역 주요 기업들이 유출되면 안됐고 기아자동차, 금호부터 일신방직까지 유치 제안이 들어갔다"고 했다.
현재 광천터미널에서 상무지구로 향하는 도로는 당시 기아차 소유였는데 그 땅을 도로로 바꾸는 대신 평동산단 부지를 제공하고 평동산단을 개발하는 금호에도 개발권을 주는 대신 평동산단 7만평을 사용하라는 제안들이었다. 일신방직도 그중 하나였다.
A씨는 "일신방직에 제시한 공장 이전 대가는 현 부지를 공업용지에서 상업용지로 용도전환시켜주고 42.6%는 기부채납받아 공원 등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일신방직이 아파트 등으로 개발해 이익을 얻으라는 것"이라며 "당시 임동 위치가 광천터미널과 구도심을 연결하는 형태라 양측은 개발수익도 충분할 거라 봤다"고 설명했다.
1994년 협약을 주도한 광주시 실무부서는 지역경제과와 도시계획과다. 지역경제과는 평동산단 활성화, 기업유치 등을 들며 적극적이었지만 도시계획과는 공업용지를 상업용지로 변경해주는 것에 대한 '특혜성 시비'를 우려해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A씨의 증언이다.
광주시는 협약 이후에도 계속 특혜성 시비를 우려했다. 동시에 경기가 회복되면서 평동산단 분양률이 급상승하자 분양해줄 땅이 부족해졌다. 평동산단에 들어와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이었던 광주시가 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리겠다고 협약한 부지를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상황이 됐다.
일신방직은 10년 사이 상무지구가 급성장하면서 임동의 개발수익이 기존 예측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봤다. 일신방직이 가동 가능한 공장을 굳이 옮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시점인 2005년, 일신방직 충북 청원공장이 화재를 입어 소실되면서 평동산단 부지로 이전하게 됐다.
A씨는 현재는 사라진 협약서가 도시계획과에 존재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1994년 협약서를 현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전했다.
A씨는 "일신방직과 전남방직 공장을 시찰했을 때 공장으로 직접 연결되던 철도부터 화력발전소 등을 보고 광주의 근현대유산이 집적된 곳이란 걸 느꼈다"며 "이곳 공장들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계획에서도 문화보존계획에 포함된 곳이다. 기존 협약서대로 상업용지로 전환해 개발하는 조건이 이행되면 그 유산들을 모두 잃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