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로 밀고자 낙인... 교직원 극단적 선택
허술한 행정탓... 공익제보자 신원 노출한 꼴||전남지역 모 사립고 교무행정사 숨진 채 발견||경찰 '일부 사실 확인' 관련자 입건해 조사 중
2018년 12월 24일(월) 19:23
클립아트코리아.
공익제보를 위해 국민신문고를 두드렸지만 실명을 포함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밀고자로 찍힌 전남지역 모 사립고등학교 여직원이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이 그간 협박을 일삼은 고발 대상자와 개인정보 유출에 연루된 전남도교육청 관계자 등을 고소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4일 장성경찰과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5시50분께 장성 모 사립고등학교 교무행정사 A(29·여)씨가 광주 광산구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숨져있는 것을 남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10일 A씨 남편은 '아내가 같은 학교 교사였던 B(60)씨로부터 지속적인 협박을 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장성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는 또 A씨가 지난 1월15일, 당시 교감 승진예정자였던 B씨에 대해 '직원으로서 보기에 행실이 바르지 않다'는 등의 내용으로 올린 국민신문고 청원이 고발 대상자에게 실명 등 개인정보가 포함된 채로 유출되면서 밀고자로 찍히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숨진 A씨의 휴대전화에는 지난 4월7일부터 5월18일까지 21회에 걸쳐 B씨가 보낸 협박 문자메시지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B씨는 유출된 개인정보를 통해 A씨가 자신을 고발한 사실을 알게됐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배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B씨의 자택에서 A씨의 고발을 유추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담긴 문건이 발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에 경찰은 B씨는 협박 혐의, 개인정보 유출에 연루된 전남도교육청 소속 C주무관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국민신문고 청원과 개인정보의 유출, 그로인한 B씨의 협박과 괴롭힘이 오롯이 A씨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반드시 보호돼야 할 공익제보자의 정보가 고발 대상자에게까지 여과없이 전해진 사실은 고인에게 큰 압박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개인정보가 B씨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수차례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과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관계당국의 허술한 행정 실수로 이 기회를 전부 놓쳤다.

장성경찰 등에 의하면 A씨가 작성한 국민신문고 청원은 1월15일 접수됐다. 운영주체인 국민권익위원회는 해당 내용을 관할인 전남도교육청에 하달했다. 국민신문고 청원을 취합해 담당 부서에 배당하는 도교육청 민원담당자는 이를 다시 인사담당자에게 전했다. 교감 승진과 관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교육청 관계자에 의하면 해당 문건은 B씨의 교감 승진 심사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B씨가 과거 물의를 빚어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교감 승진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지난 3월 승진 탈락한 B씨는 이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를 냈고, 소청심사위는 다시 B씨를 탈락시킨 근거를 도교육청에 요청하면서 불거졌다. 이때 B씨의 과거 징계 내역과 A씨가 작성한 국민신문고 청원이 전달됐다.

당시 도교육청에서 넘긴 A씨의 국민신문고 청원에는 작성자의 실명과 인적사항이 여과없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소청심사위는 민원을 제기한 B씨에게 발송하는 답변서에 해당 내용을 또다시 그대로 담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같은 교육부 소속인 소청심사위이다 보니 굳이 개인정보를 가려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교육청 입장에서는 '단순 행정착오'라고 여겨진다"고 해명했다.

개인정보 유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는 만에 하나 신원이 노출될까 자신의 모친 실명과 인적사항으로 국민신문고 청원을 작성했지만, 교내에서 영향력을 지닌 B씨가 직원들의 가족관계 기록 등을 열람하며 색출에 나서면서 금세 발각됐다.

국민신문고, 도교육청 민원담당자·인사담당자, 교원소청심사위원회, 해당 학교 교직원 개인정보 관리자 등 A씨의 신원을 보호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했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셈이다.

경찰은 B씨와 C주무관을 조사하는 한편,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 공익제보자의 실명 등을 지워야 할 책임이 있는 기관을 판가름하게 되면 교육부 관계자 등도 추가 입건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