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미술의 전설' 부샹파이 광주서 첫 전시
나인갤러리 오는 26일까지 '부샹파이 작고 30주년'전||독창적 화풍 담은 ㎠드로잉, 유화, 판화 작품 등 48점 선봬
2019년 01월 06일(일) 17:14

부샹파이 작 하노이 옛 거리

액자 속 드로잉 작품에는 각기 다른 표정의 인물들이 담겨있다. 고뇌에 가득찬 표정으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이, 익살스러운 광대, 어린 소녀들은 각각 무엇인가 선망하는 눈빛이거나 결의에 가득차 있기도, 근심있는 듯 하지만 어찌보면 평화로운 표정같기도 하다. 한결같이 소박하고 정감이 넘친다.

하노이를 담은 풍경에는 그의 정체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필선의 움직임에서 감정의 파동이 요동친다. 평범한 풍경이라 하기엔 짙게 배어나오는 색채와 밀도감이 예사롭지 않다.

베트남 화단에서 '국민화가'로 추앙받는 부샹파이 (Bui Xang Phai, 1920-1988·이하 파이)의 작품들이다. 그는 시대적 고뇌를 독창적인 미감으로 승화시킨 베트남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다. 하노이에 태어나 비엣박(Viet Bac)에 거주했던 짧은 기간과 하노이 폭격 기간을 제외하곤 하노이에서 일생을 보낸 그는 전후 하노이를 비롯해 산, 바다, 호수를 담은 풍경과 자화상, 초상화, 누드, 정물, 베트남 가극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범주에서 간과됐던 평범한 풍경과 일상을 주제로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병상에 누워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사후에도 '거리의 파이' '불멸의 화가' '베트남 미술의 전설'이라 불리우며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세계미술시장에서 찬사를 받고있다.

그의 작품이 걸작으로 꼽히는데는 공산 치하의 어둡고 쓸쓸한 하노이 거리, 자국민을 향한 애수어린 시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주곡을 어느 대가보다도 다채롭게 표현했다. 내적 심상이 드러나는 자화상에선 반 고흐를, 두꺼운 윤곽선과 세밀한 필선에선 피카소와 마티스를, 거리의 풍경 묘사에선 몬드리안과 클레를, 단순하게 표현한 인물화엔 박수근과 이중섭의 회화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예술평론가 타이 바 밴은 "만약 베트남에 부샹파이가 없었다면 베트남 미술사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을 것"이라며 "그 어떤 곳에서도 하노이 거리의 정신적, 물질적 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론했다.

파이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베트남인들의 일상과 풍경을 기록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성찰해 온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광주에 마련됐다. 광주 동구 나인갤러리에서는 오는 26일까지 부샹파이 작품 48점을 선보인다.

'부샹파이 작고 30주년'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양승찬 나인갤러리 관장과 한·베미술교류협회장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양 관장은 "부샹파이 작품은 베트남 현지에서도 작은 소품조차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광을 받고있다"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한·베미술교류협회장이 25년동안 부샹파이의 유족, 화랑, 미술관계자들과 교류하며 꼼꼼하게 수집해 온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부샹파이 작 초상화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