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영농일지 대리작성… 피해는 농민들에게
광주서 친환경 쌀 재배농가 인증 무더기 취소||농협직원이 영농일지 대리작성한 사실 들통나||농민 편의 명분삼아 수년간 관행처럼 이어져
2019년 01월 24일(목) 19:27
해당 농협의 2017년도 '등록명부 생산관리자' 문건. 생산관리자 아이디가 'KIM' 이니셜 조합만 고쳐 만들어졌으며, 비밀번호도 전부 동일하게 설정돼 있다.
"농약을 쓴 것도 아닌데, 농협의 잘못으로 1년간 애써 기른 친환경 쌀을 헐값에 팔아야 한다니 분통이 안 터지겠어요?"

지난해 광주지역 친환경 쌀 재배 농가 148곳이 무더기로 친환경 인증 취소를 당하면서 억대의 손실이 발생했다. 망연자실한 농민들은 재조사를 요구했고 그 결과 영농일지 허위작성 등이 주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농민들은 서류를 허위로 작성한 기관이 바로 농협이며, 무려 2013년부터 이같은 일을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저질러져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 "농협이 영농일지 허위작성"

24일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등에 의하면 광주 북구 충효·금곡·청옥·장등동 소재 친환경 쌀 재배 농가 148곳에 대한 친환경 인증 취소 처분이 내려진 것은 지난해 10월께다.

농민들의 요청으로 인해 조사를 벌인 결과였다. 농민들이 스스로 조사를 요구한 이유는 한 달 앞서 이뤄진 시료 채취 검사에서 일부 농가의 흙에 농약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농가에서까지 농약성분이 검출되면서 의구심을 갖게 됐다.

이에 농관원 전남지원에게 해당 지역 친환경 인증 전반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고, 인증기관인 전남대 산학협력단이 재조사에 나섰다.

결과는 참담했다. 전체 농가에 친환경 부적합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적합 판정 사유 중 농약으로 인한 건 4건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주된 부적합 사유는 엉뚱하게도 △생산관리자가 구성원을 면담하지 않고 경영관련 자료를 작성·제출 △생산자단체 소속농가에 대한 예비심사를 실시하지 않고 예비심사보고서를 작성·제출한 것 때문이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영농일지 등 경영관련 자료 허위(대리)작성이 전체 농가에서 행해졌기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누가 이것을 허위로 작성했을까. 농민들은 농협이라고 말한다. 

● 수년간 대리기재 의혹까지

그렇다면 정말 농협은 허위로 영농일지를 작성했을까.

농관원의 '친환경농축산물 및 유기식품 등의 인증에 관한 세부실시 요령'에 따르면 인증신청서, 인증품 생산계획서 등 경영관련자료의 관리는 생산관리자가 맡게 돼 있다.

그런데 농민들로 지정된 생산관리자들은 영농일지 등을 "직접 작성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농협 측이 알아서 해줬다는 것이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일이 허위로 적혔다는 주장도 제기 됐다.

본보가 입수한 해당 농협의 2017년도 '등록명부 생산관리자' 문건을 살펴보면 농협 직원들의 대리작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해당 문건에는 단지마다 1명씩 총 6명의 생산관리자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주소 그리고 아이디와 비번(비밀번호)가 기재됐다.

이 아이디·비번은 영농일지 등을 작성하기 위해 농관원 전산시스템에 접속할 때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디·비번 구성을 보면 아이디 6개중 5개는 동일한 이니셜의 순서만 바꿔가며 조합돼 있다. 'KIM2448'을 기본형으로 뒤의 숫자 4자리는 동일한 채 'MKI', 'MIK', 'IMK' 등으로 지었다. 또 6개 아이디 모두 동일한 비밀번호를 썼다.

여기에 나머지 1개 아이디는 전 농협 소속 모 과장 이름의 알파벳 이니셜과 일치한다.

해당 과장은 농협이 피해 농가들에 대해 친환경 쌀 재배를 시작한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재직한 직원이다.

이는 대리작성이 적발된 것은 2018년인데, 2017년 이전에도 허위작성이 주기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에 농민들은 이 부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농협 관계자의 고백에서도 허위작성의 정황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문제가 불거지기 몇해 전에도 모 직원이 당시 과장의 지시에 따라 생산관리자 아이디로 접속해 영농일지 등을 대신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부에서는 잘못된 행위임을 인지하고 있어도 상부의 지시인데다 관행처럼 이어져 바로잡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농협 친환경 담당 관계자는 "친환경 인증 주체는 농가다. 농협과는 사실상 상관이 없는 일인데 일부 농민들이 (농관원 조사 당시) 안일하게 답변을 하면서 사태가 불거진 것 같다"며 "농협은 물신양면으로 농민들을 도와준 죄밖에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어찌됐던 억울한 것은 농민들이다.

한 농민은 "상황이 이런데도 농협측은 여태 농민들에게 명확한 취소 사유조차 밝히고 있지 않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