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꽉 막힌 감옥" 도심속 섬 돼버린 충장맨션
왼쪽엔 22층 주상복합 전면은 주민센터에 막혀||건물 뒤편 대형 유통기업 주차시설은 신축 예정||"소음에 잠 못자고 매연 숨통 막혀 생존권 위협"
2019년 03월 13일(수) 19:48 |
13일 방문한 광주 동구 충장로 충장맨션, 앞뒤로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탓에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차량 1대가 겨우 지날만한 좁다란 통로가 이곳 주민들의 유일한 세상과의 연결점. 여기서 볼수 있는 풍경은 오로지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하늘 뿐이었다. 그마저도 주변 건물 탓에 손바닥만 했다.
충장맨션 전면부에는 지난 2016년 완공된 3층 높이 충장동주민센터가 자리했다. 오른편에는 20층 높이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서 있고, 맨션 뒤편은 NC웨이브 지상주차장에 가득 찬 이용객 차량들이 매연을 내뿜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남향인 베란다는 한낮인데도 빛이 잘 들지 않아 집집마다 실내에 형광등을 켜야 한다. 이곳 입주민들은 이런 생활을 무려 5년간이나 이어오고 있다.
44년 전 세워진 이 노후맨션에는 현재 16세대가 살고 있다. 대부분 30~40년을 거주한 이들로 이곳 말고는 떠날 곳이 없어 지내는 고령자가 주를 이룬다.
더욱이 안 그래도 열악한 주거환경은 최근 맨션 뒤편 NC웨이브 지상주차장이 5층 높이 철골주차장으로 신축될 예정이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충장맨션보다 더 높은 건물이 뒤편마저 가리면, 그나마 조각달 같은 햇빛마저도 볼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민들이 맨션의 사방에 '주차타워건립 결사반대', '충장맨션 주민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어둔 이유다.
주민들은 지난달 말부터 관할 동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주차장 신축공사라도 막아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구 측은 민원이 들어오자 일단 허가 절차를 중단하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NC웨이브 측과 협상의 물꼬를 터보려는 모양새다.
반면 NC웨이브 측은 충장맨션 입주민들의 반대로 갑작스럽게 공사가 지연돼 상당히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충장로 상인들의 교통정체 민원, 이용객들의 주차면 부족 등을 해소하고자 신축에 나선 것인데 예상치 못한 데서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에 따르면 관할 동구청에 주차장 신축공사를 골자로 한 공작물축조신고를 한 것은 지난 1월 말이다. 민원처리 기간 등을 감안해 2월 초에는 허가가 완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자재를 매입하는 등 준비를 해뒀지만, 입주민들 반대로 1달여 동안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는 것.
NC웨이브 측은 주민들의 요구사항인 충장맨션 매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당장은 자금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일단 공사를 진행한 뒤 차후 시간을 갖고 협의를 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입주민들은 NC웨이브 측이 먼저 매입에 대한 확약을 해주지 않으면, 반대를 거둘 수 없다며 맞서는 상황이다.
NC웨이브 관계자는 "입주민들이 항의를 거둔 뒤 주차장이 지어지고나면 오히려 우리 쪽에서 매입을 안 할까봐 우려하는 것은 이해한다"면서 "당장 어려울 뿐이지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생각이 충분히 있다. 그런데 주민들은 즉각 매입이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식이라 답답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관내 거주민을 최우선시 해야 할 지자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4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충장맨션과 입주민들의 처지를 십분 이해한다 해도 분쟁시 현행법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충장맨션이 위치한 충장로 일대는 중심상업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주거지역과 달리 일조권, 조망권 등 입주민의 권익을 보호받기 어렵다. 극히 일부 중심상업지역에서도 주거 일조권이 인정된 판례가 존재하나, 사실상 승산 없는 법정다툼만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인근 상인들로부터 다년간 주차난과 교통정체 민원이 쏟아져 이를 해결하기 위해 NC웨이브 측과 논의해왔던 배경도 존재한다.
실제 이 일대에서 온전한 주거시설은 충장맨션 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상가로 구성된 데다 상업지역에 세울 수 있는 주상복합이 일부 있을 뿐이다.
공작물축조신고의 경우 조건이 충족되면 허가를 내줄 수 밖에 없는 행정절차도 구청의 고민이다. 당장은 주민들과 NC웨이브 측이 협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허가를 미루고 있지만, 종내에는 허가를 내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동구 건축과 관계자는 "NC웨이브 측의 주차장 건축 신고 민원은 이미 기한을 넘긴지 오래다. 연장을 해놨을 뿐인데, 행정기관에서도 장기간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당혹감을 표했다.
그러나 어찌됐던 이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충장맨션에서 38년을 살아 온 한 주민은 "대형 유통기업의 개발논리와 이를 수수방관하는 관할 지자체에 의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숨통이 조여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