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상징물 하나 없어서 되간디" 주먹밥 아줌마가 왔다
비영리 시민예술공간 ‘메이홀&이매진’ 배지 형상화||치과의 박석인씨·임의진 목사 홍성담 작품 ‘오월 횃불’ 본떠 ||희생·나눔·대동정신 담아내 1000개 제작해 5월단체에 전달
2019년 04월 21일(일) 19:49

광주 메이홀&이매진 대표를 맡고 있는 치과의사 박석인씨가 최근 제작한 '5·18민주화운동 상징 배지'를 들고 있다. 박석인씨 제공

박씨 등이 만든 '5·18민주화운동 상징 배지'. 홍성담 화백의 판화 '오월 횃불'에 등장하는 주먹밥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차용했다. 박석인씨 제공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앞두고 광주지역 예술가들과 치과의사가 5·18을 상징하는 배지(사진)를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배지는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희생과 나눔, 대동정신을 '주먹밥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성'을 통해 형상화했다.

 21일 5·18 대동정신을 잇는 비영리 시민 예술 공간인 '메이홀&이매진'(이하 메이홀)에 따르면, 이곳 대표이자 치과의사인 박석인(57)씨와 관장을 맡은 임의진(50) 목사를 비롯한 메이홀 작가들이 최근 5·18을 상징하는 배지를 제작했다.

 배지는 민중화가인 홍성담 화백의 판화 '오월 횃불'에 등장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었다. 주먹밥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보인 희생과 나눔, 비폭력, 대동정신을 담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박석인씨와 메이홀 구성원들이 배지 제작에 나선 건 지난해 방송을 통해 제주4·3 70주년 기념식 장면을 보게 되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내빈들의 옷깃에는 하나같이 4·3을 상징하는 '붉은 동백꽃' 배지가 달려있었다.

 어느덧 40주년을 맞는 5·18이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상징물이 없는 상황. 5월 단체 관계자들이 사용해 온 '오월' 글씨가 적힌 배지나 5·18기념재단의 엠블럼을 따온 것이 있긴 하지만, 5·18 하면 당장 떠올릴 만한 수준에는 못 미친다.

 이에 박씨는 "해마다 광주에서 5·18을 기념하고 있지만 이를 상징하는 아이콘 하나 없는 현실에 광주시민으로서 조금은 부끄러움을 느낀 순간이었다"며 "4·3의 동백꽃과 세월호의 노란 리본처럼 5·18 배지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게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박씨의 생각에 공감한 임의진 관장과 고근호·주홍씨 등 메이홀 작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5·18을 상징할 만한 이미지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이 가운데 마침 메이홀에 전시 중이던 홍성담 화백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됐다는 것이다.

 박씨는 "홍 화백의 판화 '오월 횃불' 속에는 총칼을 든 시민군의 모습도 있지만, 우리는 5·18의 본질이 희생과 봉사, 나눔, 대동세상 등 비폭력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했다"며 "주먹밥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5·18의 숭고한 정신을 상징하는 데 손색없다고 생각해 차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39주년 5·18을 앞두고 배지 제작 본격화에 나선 박씨 등은 직접 홍 화백에게 원작 사용을 허락받았다. 광주아트가이드와 협업, 디자인 수정 등 실무 작업을 거쳐 최근 5·18 배지 1000개를 제작했다.

 박씨는 완성된 배지를 5월 단체와 유가족 등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남는 배지는 시민들에게 개당 3000원에 판매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수익금의 일부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위해 기부할 방침이다. 5·18을 알리면서 희생자들을 돕기까지 하는 셈이다.

 박씨는 "올해 5·18 39주년 기념식에서는 광주시민의 가슴에 달린 주먹밥 아줌마를 보고 싶다"면서 "완성된 배지를 페이스북에 올리자 각계각층의 여러분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 만든 배지가 5·18을 더 알리는 데 일조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가슴에 다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2년 남동 인쇄 골목 입구에 둥지를 튼 메이홀은 현대미술 전시회를 비롯 광주정신을 재해석한 퍼포먼스·공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박씨 등 의사들과 시민들이 건물 매입비 일부를 후원하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