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9일(목) 16:44 |

새벽 인력시장의 하루는 기다림이 절반이다. 이른 아침 부리나케 나와도 적당한 일감이 없으면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다.
"몸이 추워도 일거리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겨울 칼바람이 매서운 이른 새벽 시간. 컴컴하고 후미진 골목을 따라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만 하는 갖가지 사연들이 뒤엉킨 광주 북구 신안동의 한 새벽 인력시장 풍경이다.
이곳을 찾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매일 새벽 5시께부터 모인다. 절정인 6시께면 도떼기시장을 이뤘다가 해가 뜨기 전 승합차에 올라 삼삼오오 지역 구석구석으로 실려 간다.
도로 한쪽에는 어김없이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이 지나가는 승합차를 응시했다. 혹시나 지나가는 차량이 멈춰 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현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웃어 보이기도 했다.
이름이 불린 일용직 노동자들은 바쁘게 짐을 챙기며 승합차에 오른다. 남겨진 이들은 속 타는 한숨을 내쉬며 애꿎은 담배만 태운다. 몇몇은 그 모습을 보고는 집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60대 일용직 노동자 김모씨는 "그나마 있는 일거리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싹쓸이'하는 바람에 굶어 죽게 생겼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씨의 말처럼 이날 일감을 얻은 사람은 절반 정도인데, 외국인 노동자가 태반이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은퇴 관문에 도달한 50~60대가 대다수였다. 이들을 위해 마땅한 일자리가 준비되지 않았고, 일용직 노동자들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30~40대 젊은 층인 대다수다. 게다가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일당이 2~3만원 저렴해 건설현장에서 이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여기에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요즘 들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 뜰 녘까지 기다려도 공치는 날이 허다하다.
자영업을 운영했다는 정모씨는 "요즘 공치는 날이 많아 차비만 쓰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 있는 자식과 아내를 생각해서라도 매일 나오고 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 6시30분이 넘으면 오늘도 허탕이다. 인력시장은 의외로 조용했다. 인력시장 현장에서 시끌벅적하게 '흥정'이 벌어지는 풍경은 없었다.
26년 경력의 이모씨는 이즈음을 '일자리 보릿고개'라고 표현했다.
날씨가 추워지는 12월 초순부터 공사장 일거리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노가다'라고 불리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겨울은 부담이자 걱정이다.
얼어붙은 경기에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요즘엔 10년 이상 건설현장을 누빈 숙련공들도 일감 찾기가 만만찮다.
이씨는 "요즘 들어 일거리가 많이 줄어서 새벽부터 나와 기다려도 허탕을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덩달아 찾아오는 사람들도 줄어들어 인력사무소도 문을 잘 열지 않는다"고 했다.
오전 7시. 떠오르는 해에 그늘이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한다.
이씨는 할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더 부지런하지 못했던 내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크리스마스에도 일거리를 찾을 요량이다. 그래도 이씨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일용직만큼 정직한 직업도 없다"고 했다. "부지런한 만큼 벌어가고 게으른 만큼 못 버는 게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이라고도 했다.
그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용직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며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직업이 또 어디 있겠나"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헤어지며 악수를 위해 맞잡은 그의 손은 묵직했다. 그의 손바닥은 그가 살아온 정직한 삶을 대변하는 듯 굳은살이 단단히 박혀있었다.

어느 일용직 노동자의 손바닥. 굳은살이 단단히 박힌 그의 손바닥은 그가 살아온 정직한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