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파악은 진상규명의 핵심"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기획 -진실찾기 원년 만들자 ||1.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 ||진압군에 의한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이 핵심 ||응급기록부·입원환자 등록부 등 세세히 살펴야 ||과잉진압 사전기획·숨겨진 정치의도 파악도
2020년 04월 30일(목) 16:38 |
![]() 광주 서구 쌍촌동에 위치한 505보안부대 옛터. 1980년 5·18 당시 광주시민을 끌고가 고문하고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지원했던 장소이다. 광주시는 505보안부대 부지를 5·18민주화운동을 체험할수 있는 역사공간으로 만들계획이다. 김양배 기자 |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따른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암매장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국민통합에 기여함'이 특별법의 목적이다.
특별법에 근거해 출범한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범위는 크게 7가지다.
△부당한 공권력으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암매장 사건 및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및 조작의혹사건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및 경위, 계엄군의 헬기사격에 대한 경위와 사격명령자 및 시민 피해자 현황 △'5·11연구위원회'의 조직 경위와 활동사항 및 진실왜곡·조작의혹사건 △집단학살지, 암매장지의 소재 및 유해의 발굴과 수습에 대한 사항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사건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이다.
'군에 의해서 반인권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사망, 상해, 실종, 암매장 사건 및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및 조작의혹사건'이 첫번째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정확한 실태 파악은 그 자체가 가장 절실한 진상규명 과제라는 의미가 담겼다. 이를 통해 피해자를 확정·배상사업, 피해자 가족들의 2차 피해 치유 등이 목적이다.
●과잉진압 및 시민학살 진상규명
첫번째 과제의 핵심은 정확한 피해규모 파악이다.
발포에 의한 집단학살 있기 전,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수백 명의 시민이 사상 당했다. 계엄군의 과잉진압은 시민들에 내재된 저항의식을 자극해 조직적 항쟁으로 발전시킨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정확한 진상 파악이 필요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과잉진압이 사전에 기획된 것인지,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의도와 기획자·명령실행자 파악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이를 통해 계엄군이 시민들에 자행한 폭력행위 실태를 대상별, 지역별, 일자별로 전면 재구성해야 할 과제도 남는다.
수많은 시민 학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도 시급하다.
먼저 주남마을 사건은 11공수여단이 광주에서 화순으로 진행 중인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17명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관련자의 진술과 실제 총상 피해자의 수가 최대 7명까지 차이 나면서, 추가 희생자 문제가 불거졌다. 또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주남마을에서의 버스 총격 사건이 알려진 2건 말고 추가로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이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진료 기록 분석도 필요하다. 당시 총상 사망자와 부상자는 주로 전남대와 조선대 그리고 국군통합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사망자들에 대한 검시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일부 시신들은 가매장 되거나 사망 이후 여러 군데로 옮겨지면서 정확한 사망 경위와 장소 등은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당시 광주시내 병원 20여 곳에서 치료를 받은 사망자나 부상자에 대한 진료기록은 2000년 발간된 '5·18민주화운동자료총서'에 나와있다. 그러나 진료기록부를 모아 엮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의료인 등 전문가 집단이 당시 진료기록에 나타난 사건 경위, 장소, 총상 부위 등을 조사하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행불자 및 암매장 진상규명
80년 5월 당시 행방불명됐거나 시신이 미수습 된 이들이 많다. 광주항쟁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증거다. 그동안 진행된 피해조사 과정에서 행방불명자 신고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수많은 암매장 제보와 증언들 역시 제대로 확인되지 못했다.
행방불명자들이 한꺼번에 불상의 장소로 옮겨졌음을 시사하는 증언들은 전에도 있었다. 5·18 당시 20사단 61연대 소속 대위 김모씨는 지난 1994년 국방부 검찰부 진술에서 "병사들을 시켜 가매장하고 나무로 십자표시 해놓았는데, 후에 그곳을 교도대 병력에 인계하면서 철수할 때 시체를 헬기에 실어주고 왔다"고 털어놓았다.
3공수여단 작전참모였던 김모 소령 역시 "전교사의 지원을 받아 헬기로 부상자를 수송했는데, 사망자의 시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라고 진술했다. 소속이 다른 두 장교가 다른 날, 다른 곳에서 헬기에 의해 시신이 수송된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헬기조종사들은 매 시간별 비행기록을 서류로 남겼다. 어떤 헬기가 어떤 장소에서 시신을 싣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고 헬기조종사도 조사 가능하다. 조사위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 부분이다.
위원회는 우선 기존에 확인하지 못한 자료들을 확보해야 한다. 광주국군통합병원이 작성한 5·18 당시 '응급실 기록부'와 '입원환자 등록부' 등 부상자 관련 자료는 물론 각급 부대가 작성한 작전명령, 상황일지 등을 찾아내 기존 진술과 대조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청문회, 수사와 재판, 과거사위 조사 등에서 발언한 내용과 다르거나 추가 조사가 필요할 때에는 관련자들을 대질 심문 조사할 필요도 있다.
지난해 진상조사위 출범식에서 송선태 위원장은 "위원회는 '국방부 등의 1급 비밀문서 취급인가를 받지 않는 상태다. 따라서 국방부 장관 등의 결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5·18 기밀 문서를 작성·보존·관리했던 퇴역 군인·공무원들의 양심적 증언이 없으면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구조"라며 "보안사·국가정보원 등의 관련 자료를 심도있게 조사하고 실제 작성·관리자를 추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