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질까 매일밤 노심초사… 50년 된 주월시민아파트
드러난 철골에 시멘트 부식… 쓰레기·쥐·벌레로 몸살||80% 이상 공가에 편의시설 전무… 주택사업 진행 중
2020년 06월 09일(화) 17:14
9일 찾은 광주 남구 주월시민아파트 단지 내 모습. 오랜 기간에 걸쳐 건물 외부가 낡고 녹슬어 있다.
50년 세월을 근근이 버텨온 남구 주월시민아파트가 심각한 노후화와 열악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주거시설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낡고 부식돼 붕괴 위험성까지 높아 아파트 주민들은 물론 인근 주택과 상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서구 광천시민아파트와 함께 광주에 남아 있는 시민아파트인 주월시민아파트. 1971년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제자리를 지켜오며 넉넉지 않은 서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도맡고 남구의 흥망성쇠를 쭉 지켜봐 온 터줏대감이다.

그랬던 주월시민아파트도 이제 그 수명이 다해 오히려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걱정거리로 전락한 상태다. 근처에서 남구의 오랜 숙원사업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위한 백운고가 철거가 시작됐지만, 시민아파트 주변은 오랜 기간 슬럼화로 노년층 인구와 일용직·외국인 근로자가 모여 사는 저소득층·사회적 취약계층 주거지역으로 낙인 찍혀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

9일 찾은 주월시민아파트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4층 높이 2개 동으로 이뤄진 아파트의 벽돌 외벽은 낡고 군데군데 이가 빠지듯 부서져 있었다. 난간을 받치고 있는 시멘트 구조물과 철골 역시 심각하게 낡아 흉물스러운 모습에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려 주차된 차량을 덮칠 기세였다.

내부로 들어서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계단과 복도는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으며, 개중에는 언제 내놓은 지 모를 음식물 쓰레기도 상당해 파리 등 벌레와 쥐가 들끓었다.

집안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총 56세대 중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세대는 불과 10여 세대. 비어있는 집은 문이 활짝 열린 채 방치돼 있었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각종 쓰레기와 악취, 부식된 내부 구조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도시가스도 보급되지 않은 상태라 난방 등을 위해 LPG 가스통이 쓰이고 있었다. 예로부터 심심치 않게 화재나 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해왔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주민 A씨는 "이미 2000년대부터 건물이 낡고 오래돼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면서 "집주인으로서 거주하는 이는 서너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월세로 사는 일용직 근로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라고 했다.

옥상도 위험천만했다. 각종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옥상 난간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주민 B씨는 "옥상에 빨래를 널곤 하는데, 비라도 오는 날이면 감전될까 두려울 정도로 전선들이 널려 있다"고 했다.

낡을 대로 낡은 시설보다 주민들을 위협하는 것은 무관심으로 인한 고립이었다. 인근 상인 C씨는 "사람도 얼마 살지 않는 낡고 흉물스러운 아파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내 기억으로만 2년 전 독거사가 발생한 게 생각난다. 당장 사람이 죽어도 모를 환경"이라고 했다.

시민아파트를 포함한 주월동 389-5번지 일원에는 지난 2018년도부터 '가로주택 정비사업'이 추진 중이기는 하다. 가로주택 정비사업은 2018년 2월 개정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항'에 의거, 가로구역에서 종전의 가로를 유지하면서 소규모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다시 말해 대규모로 진행되며 절차와 요건이 복잡하고 자금과 시간 소모가 큰 재개발사업을 축소해 절차를 간소화한 구획 별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이에 인근 주민들은 정비사업을 위한 조합설립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광주시로부터 재건축 안전진단을 받았으며, 얼마 전 거주민 88명 중 71명(80.68%)의 서명을 받아 조합인가 신청요건인 거주민 80% 이상의 동의를 달성했다. 이에 지난달 30일 준비위원회 총회를 열어 조합을 구성하고, 지난 4일 남구청에 조합설립 인가신청을 한 상태다.

남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조합설립 인가신청에 따른 문서를 전달받아 검토 중"이라며 "제출된 서류 등 요건 상 문제 되는 부분이 없다면 허가를 통해 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조합설립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조합설립과 정비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통해 주월시민아파트가 더는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물이 아닌, 주거를 책임지는 보금자리로 재탄생해야 한다"면서 "생계가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얼마간의 경제적 활력을 제공하고, 인근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부응할 수 있는 지역개발의 토대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