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시험 전야
양가람 사회부 기자
2020년 12월 15일(화) 17:44
양가람 사회부 기자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1894년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시민 불복종'에서 한 말이다. 그가 남긴 명제는 공익과 사익의 관계,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에 대한 성찰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2020년에도 공익은 종종 사익에 앞선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공익 우선시 현상을 더욱 당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는 방역당국의 노력을 '공익 우선주의'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 되레 답답하다며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이야말로 '극단적 사익(여기선 邪益) 추구자'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민주주의는 꽃핀다. 정부는 코로나19 정국 초반 '국민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방역이라는 국가적 대의 속 배제되거나 희생되는 사람은 없는지 점검하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지난 3일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진행됐다. 시험 당일 오전에도 확진 수험생이 생겨났지만, 병실 고사장 마련 등 철저한 방역과 배려 덕에 수험생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대학별 수시 고사가 시작됐다. "코로나19 확진자는 면접(논술)시험에 응시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막 긴 터널을 지난 확진 수험생은 막혀버린 길 앞에서 주저앉아야 했다. 교육부는 대학별 수시 고사를 앞두고 각 대학에 비대면 방식 전환 등으로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라고 권고했다. 일부 대학들은 비대면 면접으로 전환하거나 시간대별 쪼개기 방식으로 수시 면접을 진행했다. 확진자용 별도 시험장도 따로 마련했다. 하지만 권고로만 받아들인 일부 대학은 대면 면접을 고수하며 확진 수험생의 시험 응시를 불허했다. 아예 격리 대상자의 응시를 막은 대학도 있었다.

"시험 전에 해열제를 먹고 가도 될까요?", "확진 판정만 안받으면 되니까 밀접접촉자로 분류돼도 시험 끝날 때까지 코로나19 검사를 안하면 되겠죠?" 시험 전, 입시 커뮤니티는 '시험장에 무사히 들어가는 방법'과 관련된 글로 떠들썩했다. 1년에 한 번 뿐인 기회를 코로나19로 포기할 수 없었던 수험생들은 시험 전날에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확진자 시험 응시 불가' 문구 앞에서 수험생의 응시권은 힘없이 무너졌다. 남은 건 확진자에 대한 낙인과 "중요한 일 앞두고 몸관리 못한 본인 잘못"이라는 비난이었다. (무증상 감염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를) 캠퍼스 내 감염을 막기 위해 확진 수험생을 위한 격리 시험장소는 내어줄 수 없다는 일부 대학의 주장은 진정 공익을 위한 것일까. 내년에 있을 정시 면접에서는 모든 수험생들이 전날 밤 편히 잠들 수 있길 바란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