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의 귀환
이용규 논설실장
2021년 08월 17일(화) 14:25 |
구한말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대한제국이 을사조약과 정미조약 등으로 국권을 잃자 북청·삼수·갑산일대에서 의병을 규합, 일제에 저항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 간도와 연해주로 항일 투쟁의 무대를 옮긴 홍 장군은 최진동 장군과 함께 1920년 6월 중국 길림 봉오동전투에서 일본 월강 추격대를 대파했다. 이 해 10월에는 김좌진 장군을 도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냈다. 일제의 대대적 토벌을 피해 1921년 러시아 연해주로 들어온 홍 장군은 콜호즈(협동농장)를 차려 민족 의식을 일깨우고, 항일 무장 투쟁을 기획했다. 1922년에는 극동민족대회에 고려혁명군 대표자로 참석, 레닌으로 부터 권총을 선물받기도 했다. 홍 장군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 크줄오르다로 강제 이주 당했다. 홍장군이 선봉신문·고려극장·조선사범 대학생들과 함께 연해주를 출발해 10월15일 도착한 크줄오르다의 날씨는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었다.
홍 장군은 유랑의 삶을 사는 고려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정신적 지주였다. 강제이주 후 1943년 76세 일기로 서거때까지 머무른 크줄오르다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공원과 거리로 조성해 그를 기리고 있다. 1990년대 남북이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놓고 치열했던 상황에서 고려인들의 반대가 심하기도 했다.
특히 홍 장군이 수위장으로 말년의 삶을 보낸 고려극장은 홍범도 장군을 주제로 매년 한국에서 공연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알마티 국립고려극장에서 만난 서툰 한국어로 대본을 익히는 고려인 배우들의 열정이 기억에 남는다.
봉오동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 유해가 지난 15일 카자흐스탄에서 78년만에 봉환, 고국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17일까지 국민 추모기간을 거친 홍장군의 유해는 18일 대전 현충원 묘역에 안장된다.
독립군 후예들의 보금자리인 광산구 고려인마을이 홍범도 장군 특별전으로 장군의 귀환을 축하한다. 이달 31일까지 고려인 문화역사박물관 숨과 결에서만 볼 수 있는 귀중한 콘텐츠들이다. 홍 장군이 1929년 연해주 한까 호수 인근에서 새 아내 이인복과 그의 가족들이 찍은 원본 사진, 1951년 고려일보 전신인 레닌기치가 방치되고 있는 홍 장군의 묘역 관리를 소련 당국에 제기한 신문 기사와 이후 레닌기치 직원들의 묘지 참배 사진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994년 홍 장군의 손녀가 크줄오르다 중앙 묘역 관리소장에게 "홍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서 사본도 소개된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 투쟁에 몸을 던진 홍범도 장군의 삶을 느껴보는 귀중한 기회가 됐으면 한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