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리더를 꿈꾸는 당신, 왜 출마합니까
권한남용·갑질·줄세우기…||지방자치 30년 불구 그대로||철학도 콘텐츠도 없고 말만||하드웨어 치적중심에 재정 발목||지역 대변신 성공 사례 참고를||역량 검증 토론회 강화 필요
2021년 12월 30일(목) 13:43
이용규 논설실장
"제가 만약 시장이 되면 봄마다 보도블록 교체 안하겠습니다. 쓸데없는 다리 안놓겠습니다. 정치 비자금 안만들겠습니다. 인사 청탁 안받겠습니다. 이권이 개입된 그 어떤 시정도 안펼치겠습니다. 안하겠다고 한 것 반드시 안하겠습니다."

 몇년전 가상의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지역정치와 행정을 풍자적으로 풀어낸 TV 드라마 '시티홀'에서 시장 비서에서 시장으로 당선된 신미래의 공약이다.

 올해로 30년을 맞은 지방자치 실상은 신미래의 공약과 닮은 꼴 양상이다.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권한 남용과 오용으로 발생한 예산낭비와 부정부패와 갑질, 줄세우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전으로 되돌아 간 듯 그대로이다.

 주민들도 숙원사업이라며 수백억대 프로젝트 유치에 맞장구를 쳤다. 자체수입으로 인건비 부담도 못하는 지자체이지만 포부는 야무지다. 지역의 조그만한 인연이라도 그럴싸하게 포장한 사업계획서를 들고 중앙의 유력 인사들을 통해 국비를 확보하는 식이다. 평소 같으면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사업에 나서는 단체장들도 무능하게 비쳐질까봐 국비 경쟁에 빠질리 없다.

 F1경주장 건설, 대형국제박람회, 산업단지 조성, 국제스포츠대회, 지방도로 건설, 박물관, 미술관, 크고 작은 축제 등 등. 그동안 도내 지자체에서 추진했던 사업 목록 중의 일부다. 기업 CEO라면 결코 뛰어들리 만무한 사업들이다. 무리한 투자는 바로 한계를 드러내, 시설 관리와 운영에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종착점에 이른 민선 7기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프로젝트들이 이름만 바꿔 론칭되기는 마찬가지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지역의 주요 장소에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패턴도 과거와 유사하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지역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몇년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슬로건을 떠오르게 하는 물음에 결코 후한 점수는 받지 못할 것같다. 물론 지역여건에 맞는 정책으로 주민에게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실험과 도전이 있었다. 재정규모도 괄목상대할 정도로 커졌다.

 행정의 역동성에 비해 내실은 빈약하다. 빛좋은 개살구격이다. 지난해 전남 22개 시군 평균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51%)에 훨씬 못미치는 14%로 인건비 충당도 못하는 실정이다. 30년간 지역 부흥을 외쳤지만 광주·전남의 인구는 최근 10년간 하향곡선이고, 전국 통계적으로 출생보다 자연감소가 더많았던 지난해만도 광주·전남 역시 젊은 층 수도권 유출 등 인구 감소의 뇌관을 피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공화국'에 살고 있고, 비대해진 경기 수원, 용인, 고양시는 특례시라는 또 다른 지위를 부여받았다. 앙상한 뼈만 남은 도내 지자체 상당수가 20년이내 소멸을 예고한 암울한 미래의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와 대조된다.

 인구 절벽을 맞고 있는 지자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다. 도내 지자체들의 코로나 지원금 지급 사례는 재정적 고충을 반증한다. 불가피하게 지급을 못한 지자체에서는 단체장이 사과성 담화문까지 발표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인 합계출산율(0.84명)이 말하듯 고꾸라진 인구감소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올해까지 16년간 쏟아부은 198조에 비해 아이 울음소리는 끊긴 지 오래고, 부음이 더 많다. 대규모 지원금을 투입하는 출산장려정책의 허실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장려금만 받고 다른 지자체로 옮겨 가는 먹튀 출산의 현실도 목격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지방자치는 주민복지와 건강을 책임지면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어가느냐가 최대 현안이다. 그동안 단체장의 비전과 행보는 콘텐츠를 말하나 실행에서는 치적중심의 하드웨어에 집착했다. 개인의 입신양명이나 정치적 행보에 의해 예견된 결과였다. 지역에 대한 고민과 소신행정이 최고의 덕목이 돼야한다.

 여기서 지역의 생태 환경과 문화적 자원으로 젊은 창업자들의 놀이터이자 지방 회생 모델로 변신해 생태와 경제, 두마리 토끼를 다잡은 담양군의 역동적 사례는 본보기가 될 것같다. 지역활성화를 명분으로 생태를 훼손하지 않고도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수 있음을 보여줘서다.

 지방자치 2.0시대에 맞는 모든 행정 절차와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스템도 미룰 수없는 과제다. 단체장을 비롯한 의원들의 임기동안 사업 추진 과정과 결과 기록이 공개되면 제이득만 챙길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자체 기록관 건립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

 내년 6월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입지자들의 얼굴 알리기가 활발하다. 어느 지역의 경우 단체장 입지자가 20여명에 달할 정도로 과잉이다.

 그렇다고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지방자치의 소신과 지방경영에 대한 철학과 고민은 읽혀지지 않는다. 무조건 진격이다. 지역 정치 지형에 있어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선거 공학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리당원 확보라는 믿는 구석 때문일 것이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하는데 이는 오산이다. 지방자치 리더는 우물안 개구리 격의 골목대장 노릇이 아니고 중앙 정부에 끊임없이 정책 어젠다를 제공하고, 세계속에서 내 지역을 상품으로 내놓아야 하는 막중함이 주어진다.

 경력 관리가 아닌 실력과 통찰력있는 지도자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지방자치 2.0시대에 '신미래'의 선거공약이 풀뿌리 민주주의, 초심을 일깨우는 울림판이 됐으면 한다.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