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54-2> "모호한 법 조항 허점 많아… 실제 처벌 힘들 수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노동계 입장 ||해석 따라 판단 달라 ‘우려’ 목소리||“과로사 등 적용 범위 확대 필요” ||무조건 작업 중지… 노동자 불만도
2022년 01월 23일(일) 17:34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1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등 허점·사각지대가 많다고 주장한다.

우선 모호한 법 조항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9항에는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자는 기업의 대표이사·이사장·기관장 등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안전보건체계 구축에 권한·책임을 가진 최고안전책임자(CSO)를 뜻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CSO라는 '방패막이'를 세워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가 처벌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송성주 사무국장은 "현재 대부분 건설회사가 컨설팅을 통해 노동 안전 담당 임원을 배치해두고 있다"며 "법안 시행 자체는 반갑지만, 처벌 대상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은 등 내용이 모호한 부분이 많아 중대재해 발생 시 법을 적용하는 데 꽤 어려운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이유는 현장의 안전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건설 업체들은 '어떻게 하면 책임을 회피할까'에만 집중돼 있어 큰 문제"라며 "이번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의 사퇴를 보면 알 수 있듯, 대기업 총수나 오너는 대표이사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해놓는 경우가 많아,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런 점들은 분명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고 했다.

전문가도 법안을 통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실제 처벌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안전 지원팀 신설은 안전 관리 향상 등 재해 건수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기에 (CSO 선임이)오로지 책임 회피용을 위한 인사는 아닐 것"이라면서도 "법이 시행되더라도 책임 주체·인과관계의 모호성 등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경영책임자가)처벌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여전히 쉬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법의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번에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 828명 중 80.7%(668명)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근본적인 대책과 멀다는 목소리다.

또 5인 미만 사업장 여부를 판단할 때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 종사자는 포함되지 않는 것도 논란이다. 배달 대행업체가 관리자를 4명만 채용하고, 배달 기사 수십 명과 위탁 계약해 배달을 맡겨도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할 명분이 없는 셈이다.

이 외에도 직업성 질병의 범위에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뇌 심혈관 질환 등이 빠진 점도 노동계는 우려하고 있다.

광주시노동센터 신명근 센터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은 2024년 이지만 이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며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곳은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인데, 시행의 의미를 잘 살리고자 한다면 제외·유예 없이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년 과로사로 수백 명이 사망한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가 주 60시간 이상 일하기 때문이다"면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대재해처벌법에는 뇌출혈 등 관련 질병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과로성 질환이나 근골격계로는 사람이 안 죽는다는 게 그 이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취지는 기업주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하지만 여전히 허점이 너무 많다. 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견고하게 개선해 실효성을 강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강압적인 안전관리 체계'가 됐다며 한탄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건설 노동자 이모 씨는 "현재 일하고 있는 현장은 중대재해처벌법 1호를 피한다는 이유로 법 시행일인 27일 전후로는 아예 '올 스톱' 될 예정이고, 이후에도 주말 작업은 전면 금지됐다"며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은 교육을 통해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것을 계도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관리 감독해야지 이렇게 일을 멈추게 하는 건 아니지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건설 노동자 중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꽤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정말 필요한 법인만큼, 건설사들은 단순히 법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닌 현장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첫 시행인 만큼 현재 기준·판단이 명확하지 않다"며 "처벌 수위 등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 앞으로도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인 사전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성현 기자 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