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보호자 없으면 '한표 행사' 엄두도 못 내죠"
휠체어 장애인 설창기씨의 한 표 ||걸어서 10분 거리도 ‘새빛콜’ 이용 ||가파른 문턱 경사로 힘겨운 이동 ||지난 대선 광주 15곳 안전성 지적
2022년 06월 01일(수) 17:23

휠체어 장애인 설창기 씨가 1일 투표소로 이동하기 위해 광주시가 운영하는 교통약자이동지원 서비스 '새빛콜'에 몸을 싣고 있다.

"혼자서는 투표 못하죠. 아니 안 하고 말죠."

7년 차 휠체어 장애인 설창기(79) 씨는 '빨간 날'인 1일 누구보다 채비를 서둘렀다. 설씨에게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노동이다. 그럼에도 그는 투표를 위해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인다.

동구 동계로에 거주하는 설씨의 투표소는 걸어서 10분 거리인 동명동 제2 투표소. 대광새마을금고 건물 3층에 있고 복도가 협소한 탓에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동하기에 어려운 곳이다.

"대선 때도 거기서 투표했어요. 그런데 중증장애인은 보호자 없이는 못 들어가겠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아들하고 갈 예정이야."

설씨의 외출은 절차가 필요하다. 오전 9시30분, 광주시가 운영하는 교통약자이동지원 서비스 '새빛콜'에 배차 신청을 한다. 그는 휠체어 전용 칸이 설치된 12인용 승합차 새빛콜을 이용해야만 차량 이동이 가능하다.

전날 설씨가 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잡았던 새빛콜 배차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렸기 때문에 그는 이날 콜 접수를 잠깐 고민했다.

그는 "종종 배차 시간이 오래 걸려 기다리는데 일이다"며 "투표소가 가까워도 편안한 길이 아니라 혼자 이동이 어려워 새빛콜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이 좋게도 이날은 바로 새빛콜이 잡혔다. 설 씨는 "우연히 새빛콜 기사님이 근처를 지나면 금방 잡히기도 한다"며 "아들이 있어 직접 이동할까 했는데, 잡힌 김에 얼른 나갔다 와야겠다"고 말했다.

얼마 안 있어 설씨는 아들과 함께 새빛콜에 휠체어와 함께 몸을 실었다.

그는 "중증장애인들은 아마 투표율이 낮을 것이다. 이동도 어렵고 투표소가 협소하면 그냥 안 하는 게 몸이 편하다"며 "투표소까지 가는 길도 친절하지 않아서 이동 자체가 무리다. 노인들은 투표소 위치 정보도 잘 모른다. 투표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일이다.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설씨는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힘겹게 차량에 탑승하고 힘겹게 내려야 했다. 도착해도 문제다.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도록 설치한 문턱에 경사로가 너무 가팔라 보호자 도움이 절실했다. 투표 부스 사이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 휠체어를 몰기도 쉽지 않았다.

외출의 목적이었던 투표를 끝내고 나니, 설씨의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산책도 할겸 돌아가는 길은 직접 이동하기로 했다. 짧은 거리지만, 울퉁불퉁한 도로, 차도와 구분이 없는 이면도로, 문턱이 높은 인도, 경사가 있는 언덕… 그에게 험난하다. 아버지 이동을 돕던 아들은 나지막히 말했다.

휠체어 장애인 설창기 씨가 1일 보호자인 아들의 도움을 받아 좁은 투표소 복도를 돌고 있다.

"혼자서는 '넘사벽'이지…. 저도 장애인 가족이 되어 보니깐, 알겠더라고요. 얼마나 이 사회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졌는지."

설씨는 정치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는 "광주가 민주당 텃밭이니 힘을 실어주고 싶은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며 "대선 때도 팔 장애가 있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는데, 민주당이 너무 못했다. 결국, 정치도 소수자는 계속 소외되고 그 나물에 그 밥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앞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차연) 광주지부는 지난 대선 때 지역 투표소를 모니터링한 결과 15곳에 대해 안전성이 부적합하다고 밝혔다. 휠체어가 통과하기에 투표소 통로가 좁고 경사로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 북구 오치1동 제1투표소는 지하1층에 해당해 경사로에 대한 위험성이 컸다. 그런데 이 15곳은 이번에도 지방선거 투표소로 지정됐다.

배영준 장차연 광주지부 활동가는 "대선 때 장애인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곳으로 선정된 곳들이 이번 지선에도 다시 선정됐다"며 "이는 장애인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는 지난달 26일 장차연 광주지부와 함께 '투표소 인권영향평가'를 진행했다. 장차연 광주지부는 △동구 5곳 △서구 5곳 △남구 6곳 △북구 5곳 △광산구 5곳을 대상으로 진행된 모니터링 결과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