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에도 눈물"…농민들 삭발·황금들판 갈아엎기 분통
영암서 농민들 총궐기 대회||2년 연속 풍년 재고↑ 가격↓||전년보다 1가마 27.7% ↓||"물가 상승 쌀값 폭락 분통"
2022년 08월 28일(일) 16:45

'쌀값 폭락 규탄! 영암 농민 총궐기대회'가 열린 26일 영암군 군서면의 갈아엎은 논을 농민이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벼농사 풍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농민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산지 쌀값이 공급 과잉으로 지난해보다 20% 넘게 폭락했기 때문이다.

농민들로부터 쌀을 수매하는 농협 역시 넘치는 재고로 보관비용이 급등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쌀값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고민해야 할 정부에서도 별다른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어 농민들의 속만 타들어가는 중이다.

지난 26일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벼 논에서 쌀값 폭락에 따른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한국후계농업경영인 영암군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영암군농민회, 전국쌀생산자협회 영암군지부 주최로 진행됐다.

이날 집회에서 한창 낟알이 익어가던 농민 최치원(46)씨 논 2970㎡(900평)이 갈아 엎어졌다. 최씨 논에는 쌀을 수확하는 콤바인 대신 트랙터가 들어갔고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는 쑥대밭으로 변했다. 이른 봄부터 논을 갈고 볍씨를 담가 파종을 하고 정성을 들여 키운 벼가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농민들은 지켜만 봐야 했다.

최씨는 "5월 말 모내기를 하고 이삭 거름과 제초 등으로 키운 벼를 갈아엎는 것을 보니 미치겠다"며 "오죽하면 논을 갈아 엎겠나. 이렇게라도 해야 나락값이 오를 것 같아 결정했다"고 말했다.

2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쌀 1포대(20㎏) 가격이 4만615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만8929원)보다 27.7%(1만2779원)나 떨어졌다.

쌀값이 이처럼 크게 떨어지는 데는 쌀소비 감소 현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생산량 증가로 인한 재고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농협에 42만8000톤의 쌀이 재고로 남아 있는 상황. 쌀이 남아돌면서 이를 수매하는 지역 농협의 보관 비용 부담 역시 커졌다. 창고에 보관한 쌀을 풀면 보관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대신 쌀값이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하게 돼 이마저도 쉽지 않다.

농협은 조합원이자 고객인 농민 부담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서라도 쌀을 시중에 풀지 않고 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고 증가와 가격 폭락이 지속될 경우 지역농협은 올해 햅쌀 수매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농협은 고육지책으로 지역 농협에 쌀 8만톤의 보관비용인 무이자 자금 3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지난 10일 밝힌 바 있다.

지난 26일 오전 전남 영암군 군서면에서 농민들이 '쌀값 폭락 규탄! 영암 농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쌀값 폭락에 따른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벼 갈아엎기 투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연간 40만톤 이상에 달하는 쌀 수입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정부는 매년 40만8000톤에 달하는 쌀을 수입하고 있으며 이중 4만여톤이 밥을 짓는 용도로 알려졌다.

전국쌀생산협회 영암군지부 한봉호 회장은 "농산물 가격은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요동을 쳐 왔다"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농민들은 파산할 지경"이라고 정부의 정책을 비난했다.

정부는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쌀 37만톤을 시장 격리 조치했다. 하지만 시기를 놓치고 '최저가 입찰과 역공매'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오히려 가격 폭락만 가져왔다고 농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한 농민은 "기름값, 비룟값, 농약값, 인건비, 대출이자 등 모두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유일하게 농민들의 목숨값인 쌀값만 끝없이 폭락하고 있다"면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농민들은 쌀값보장과 양곡관리법 개정, 구곡 전량 시장격리, 밥상용 수입 쌀 방출 중단 등을 요구했다.

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농민들은 전남도청으로 이동해 쌀값 폭락에 따른 대책을 촉구하며 집단 삭발을 했다.

김종수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쌀값 폭락의 원인은 시기를 놓치고 잘못된 방식으로 시장 격리를 시행한 정부와 양곡관리법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국회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국회, 전남도는 쌀값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소속 11개 읍·면 지회장들은 삭발했다. 이후 농민들은 의견서를 전남도에 전달했다.

한편 농업계를 대표하는 농민단체와 지역농협 등이 29일 오후 2시 서울역 12번 출구에서 '농가경영 불안 해소 대책마련 촉구 농민 총궐기 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대회에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한국4-H본부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한국4-H청년농업인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업경영인조합장협의회 △농협벼협의회 △농협조합장정명회 등 11개 단체가 공동주최하며 1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농촌 현장의 어려움을 정부와 정치권에 알리기 위해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삼각지역 방향으로 가두행진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 현장에서 농정 현안에 관한 도시민의 관심을 높이는 동시에 국산 농산물 소비 촉진을 장려하기 위해 참여 단체와 농협은 '국민 쌀 나눔 행사'를 함께 진행한다.

김은지 기자 eunzy@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