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칼럼>광주 호남학진흥원을 부안에 넘긴다는 데?
민선8기 느닷없이 건립도 안된 유학진흥원에 통합론||5년전 호남권공동연구기관 설립 제안 전북뿌리쳐||광주전남 별도 기관 건립…짧은 기간 7만여종 자료 수집||전북 연대 공동발전 명분에 호남학진흥원 통합 논의 ||전북 연대 경제공동발전 명분에 호남학진흥원 논의 ||목숨처럼 아낀 자료 기증자들 반환 요구 등 반발 ||지금은 흔들때가 아니고 독립적 육성에 주력을
2022년 11월 20일(일) 16:25

이용규 논설실장

 올해들어 시간날 때 마다 고향을 찾아 지역 문화를 답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한도, 의병도, 소리도 모두가 관심 사항이고 내 고향 함평천지를 새롭게 알아가고, 자부심을 느낀다. 지난 7월에는 '함평천지 늙은 몸이'로 시작되는 호남가 노래비를 전국 향우들과 함께 함평 엑스포공원에 세우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최근에는 향우회지 원고 작성을 위해 함평의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태어나 자란 고향이지만 처음 가보거나 생소한 지역도 많아 "내가 너무 지역을 몰랐구나"라는 생각에 부끄러움도 들었다. 발로 뛰며 찍은 사진 한 컷이, 현장을 담은 글이 향우들에게 고향생각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들뜨기도 한다.

 고향을 알아가고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는 이 것이 지역학이고, 넓게는 호남학의 첫걸음으로 여긴다. 몇 주째 고향으로 발길을 돌릴 때마다 한국학 호남진흥원(이하 호남학진흥원)이 오버랩됐다.

 사설이 길었다. 광주에 있는 호남학진흥원을 부안에 새로 생길 전라 유학진흥원에 이전 추진 파문으로 광주·전남 역사, 문화 학계를 비롯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설립 5년만에 7만여종에 달하는 호남 관련 자료를 수집해 빠르게 자리를 잡았던 기관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수긍이 안된다. 모든 사안에 물음표만 따라올 뿐이다. 지난 5년전에 3개 광역지자체가 호남학 공동연구기관을 만들기로 해놓고 막판 부지 선정을 이유로 단호하게 손을 뿌리친 전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호남학진흥원을 굳이 보내려고 하니, 황당하다.

 그동안 수집된 호남학진흥원의 각종 자료는 지역민이 보여준 애정의 결과다. 마한, 의병, 고서, 서화,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등 광주·전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정신 문화적 고갱이같은 콘텐츠들이다. 앞으로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등 고대 최고 문화상품으로 찬란한 꽃을 피운 광주·전남 도자문화, 전라도 음식 등 챙겨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진흥원을 중심으로 강호의 전문가들이 각 분야에서 천착해온 내공으로 먼지 쌓인 자료에 파묻혀 보물을 발견하는 일에서 행복감이 넘쳐난다.

 고인이 되신 장인께서도 향토 사학에 열정이 많아 바쁜 농사철에도 열일 제쳐놓고 답사를 나섰던 그 모습이 선하다. 가족들이 모이면 답사 소감을 말씀하시곤 했다. 함평에 고려청자 도요지가 있었고 음식, 의병, 월야와 나산의 고분과 마한 등 명강사가 풀어내는 함평의 재발견이었다. 강의는 열정적이었고, 우리들은 귀를 쫑긋한 채 호기심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향토사에 관심있는 이들의 열정에 힘입어 호남학진흥원이 짧은 기간에도 뿌리를 내리는 힘이 됐음은 분명하다.

 호남학진흥원과 전라 유학진흥원을 통합하는 논리는 안동 한국 국학진흥원처럼 대등하게 키우겠다는 발상이다. 유학과 호남학, 같은 듯하나 다르다. 그런데 유학과 호남학이 성질이 다름에도, 민선 8기들어 이 이슈가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발상이 신통방통할 뿐이다.

 유학이라는 간판아래 호남학은 그저 한 장르에 불과하고, 지향하는 궤가 다르다. 당장 호남학진흥원에 귀중한 고서를 기증한 사람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기증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목숨처럼 아꼈을 자료들을 기증한 이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절절한 그 마음은 지역을 옮기면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는 것만큼이나 비상식적인 공권력의 폭거라는 판단에 격한 분노와 감정이 담겨있다. 광주전남의 정신문화의 요람을 키우지는 못할 망정 통큰 상생 결단을 했다고 퍼포먼스로 단체장들만 생색내는 이러한 그림에, 박수치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다.

 또 전라유학진흥원이 광주,전남,북의 상생발전 고리가 된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500만 광역경제권을 염두에 두고 전북에 환심을 살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제는 그 필요성이 합목적성을 갖고 있어야만이 공감대를 가질수 있다.

 영남학이랄 수 있는 안동 국학진흥원이 영남지역 모두가 참여하지도 않고, 논산에 세워진 한국 유교문화진흥원도 충청권 모두가 구성되고 있지도 않은 데, 유난히 호남학만 성질이 다른 분야와 억지로 통합을 추진하려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한 근시안적 시각이다.

 그런데 기관의 기능과 효율성을 앞세워 행정력으로 통합몰이에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민주화시대에 있어 전근대적 업무 방식이다. 광역단체장 3명이 "개인적 자리에서 나온 의견"이라고 하면서도 3개 지자체 실무진이 만나 협의하고 통합 애드밸룬을 띄우며 호남학진흥원을 우회 압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방식이라면 전북도 반가워 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광역지자체 산하 기관의 통합은 그 가치를 서로 존중하고 더 큰 발전가능성을 확인하는 선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호남학진흥원과 전라 유학진흥원의 통합 논의는 단한번의 공론화 절차도 없어 정치적으로만 접근했다. 호남학진흥원이 아무리 힘없는 연구기관이라고 해도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 맘대로 해도 될 일은 아니다. 짧은 기관에도 튼실하게 자리잡게 해준 지역민들의 관심과 애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특정인이 거론되는 것도 정의롭지 못하다. 한사람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모든 것을 부정한 채 뒤돌아갈수는 없다.

 이러니 호남학진흥원과 전라유학진흥원의 통합 이슈에 대해 별에 별 말이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해야할 기관이 정치적 복선으로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하는 이유, 이러한 소문에 의한 갈등과 혼선을 초래한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가?

 3개 지자체장 모두가 존중하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오늘날 K문화 강국의 기틀을 놓은 것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지켰기에 가능했다. 호남학진흥원은 더 알차게 성장해야 한다. 더 이상 기능과 효율의 잣대로 따지지 말자. 각 기관의 특성이 있는데, 정치적 잣대로 얘기하는 것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도지사는 호남학진흥원에 닫은 마음의 문을 열고, 지역사회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호남학진흥원 이전 논의의 반대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바란다.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