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김성수 정치부장
2022년 12월 08일(목) 13:42
김성수 부장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공직사회의 고질병인 '부실 용역' 이야기다. 용역은 흔히 정부기관이나 지자체가 어떤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할 때 근거로 내세우는 도구다.

정책연구 용역 남발과 짜맞추기 연구 용역까지…. 공직사회에서 이뤄지는 연구 용역 상당수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마다 부실용역이 남발되는 것은 "타당성이 충분하다"라는 정책연구 용역결과에 쉽사리 수긍하고, "문제 있다" "잘못됐다"라는 지적이 나오면 지자체는 용역 탓으로 돌리는 까닭이다.

부실용역은 자칫 행정기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광주시 사례만 봐도 그렇다.

마침 지난 5일 열린 '우치공원 활성화 기본구상용역 최종보고회'가 그랬다. 당시 취재를 했던 많은 출입기자들도 수긍하기 어렵고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공감 부족형 용역이라는 논란을 키웠다.

광주시는 이날 최종보고회를 통해 우치공원 활성화라는 전제로 한 광주시 주도, 민간주도, 광주시+민간 등이 담긴 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민자 유치 사업이 전체 11개 사업 중 7곳이나 차지한다. 우치공원 활성화는 공공보다는 민자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수긍한다.

다만 민간기업의 투자비율이 높아질 경우 과도한 수익 보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또 우치공원 대다수가 광주시 소유임에도 임대 형식으로 민간투자가 이뤄질 경우 특혜 논란도 우려된다.

용역 결과대로 추진했다간 '제2의 어등산 개발'이라는 전철을 밟을 우려도 나온다. 광주시의 어등산 관광단지 개발은 민자 투자만 믿다가 16년째 지지부진하다. 기존 사업자와 수년째 소송전도 벌이고 있다.

우치공원 활성화 용역은 그나마 낫다. 광주시가 대구시와 '달빛동맹' 차원에서 2038 하계아시안게임 공동 유치를 위해 의뢰한 연구 용역이 부실 덩어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민선8기 광주시에 대한 첫 광주시의회의 행정감사에서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용역은 광주시→조선대 산학협력단→조선대 스포츠과학연구소→일부 교수 등으로 3∼4단계 하도급이 이뤄진 부실로 확인됐다.

용역보고서에 광주 지역 취업 유발 인원이 2만명에서 무려 96만명으로 부풀려졌고, 선수촌으로 활용될 임대아파트 보수 등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지출 항목이 누락됐다. 이번 부실용역은 결국 광주시의 행정 신뢰마저 무너뜨렸다.

전남은 부실용역으로 막대한 재정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전남도가 F1(코리아그랑프리)대회 유치를 위해 지난 2009년께 의뢰한 연구용역은 예상 수입을 부풀려 '장밋빛 사업'을 부각시킨 대표적인 부실용역으로 통한다.

용역결과 2010년 첫 대회 때 70억원 등 2016년까지 모두 1112억원의 흑자 발생을 예측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도는 대회 4년 만에 1900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하자 대회를 포기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10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 당시 익숙함의 핵심으로 꼽힌 게 불필요한 용역이었다.

공직 내부에선 볼멘소리도 있을 터. 업무가중에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용역을 공직자들이 떠안기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문 영역, 사업의 중요성에 따라 용역은 필연적이다.

부실용역의 책임도 민선 단체장들의 공약 남발과 무리한 추진, 수주를 위해 '을'로 전락해버린 용역기관의 기능 부실이 빚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연구용역에 익숙한 공직사회가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용역에 의존하려는 분위기는 분명 존재한다. 사업 방향과 정책 도출을 위한 공직사회의 부단한 노력부터 수반된 뒤 부족한 것을 용역으로 채우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결국 공직사회가 용역을 고집하는 건 책임도피의 수단이자 행정의 익숙함, 곧 관행처럼 비춰질 수밖에 없다. 강 시장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선언은 무분별한 용역을 지양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도전보다 편함이 우선이 되고 낯섦보다 익숙함에 끌리는 법이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따지느니, 좋은 게 좋다는 식이 바로 공직 내부에 똬리를 튼 '익숙함' 아닐까.

중국의 사상가이자 누구보다 과감한 개혁을 주창한 한비자(韓非子)도 익숙함을 떨쳐 내는 것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변화해야 한다. 마하의 속도로 급변하는 세상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익숙함을 버리고 과감하고 창조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해야한다. 공직사회는 지역발전과 지역민을 위해 존재한다. 늘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게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 첫걸음이 용역에서 부터 시작되길 기원해 본다.

김성수 기자 seongsu.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