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위의 인생92> 토마토 껍질 벗겨지듯 피부가 벗겨지는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두 번째
2022년 12월 29일(목) 15:53
차노휘
스페인 산타아고로 가는 프랑스 첫 순례길 첫 시작점은 생장피드포르(Sanit-Jean-Pied-de-port)이다. 파리에서 5시간 정도 테제베를 타고 바욘에 도착해서 또 완행열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피레네 산맥 아래 조그마한 마을이다. 불어를 못하는 내게 시골 한적한 역사 자동발매기는 승차권 발권용이 아니었다. 그저 낯선 기계일 뿐이었다. 해가 질 무렵 겨우 생장에 도착해서 낯선 이들과 한 방에 짐을 풀었을 때도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순례자가 될 수 있었다.

순례자가 되기 위해서는 순례자만의 신분증(?)이 필요하다. 그것은 순례자패스포드이다. 순례길 중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지역에 순례자 사무실이 있고 그곳에서 여권을 만들 수가 있다. 그 패스포드가 있어야지 알베르게에서 묵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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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Albergue)는 스페인어로 순례자들이 묵는 저렴한 숙소를 말한다. 생장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어가는 동안, 한 공간에 침대 2개에서부터 500개가 있는 알베르게가 10~30km 마다 있다. 자신의 발걸음 능력에 따라 알베르게를 선택하면 된다. 성별 상관하지 않고 들어온 순서대로 침대 배정을 받는다. 그곳에는 순례자들만 있을 뿐이다. 비교적 사립보다는 공립이 싼 편이다. 하룻밤 순례자가 묵어야 침대 하나 가격은 기부금을 받는 곳에서부터 비싸면 20유로까지 한다.

알베르게에 머무르면서 완주증을 받는데 필요한, 스탬프를 차곡차곡 패스포드에 찍어 두어야 한다. 그것은 순례 여정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스탬프는 성당, 바(간이식당) 등에도 마련되어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같은 알베르게에서 이틀 묵기는 힘들다.
나는 미국출신 남자 순례자와 한 방에 침대 두 개가 있는 곳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다. 머리를 각자 다른 방향에 두고 밤새 뜰 한쪽 풀장에 쏟아지는 수돗물 소리를 들으면서 잤던 기억이 있다. 군대 막사와 같을 것 같은 한 방에 침대 500개가 있는 알베르게에서도 자고 싶었지만 그곳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인적에 있는 곳이라 나는 하루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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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나는 밥은 굶어도 꼭 하는 일이 있다. 샤워와 빨래이다. 배낭 무게 때문에 여벌옷을 여유 있게 챙길 수가 없다. 걷기를 마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범벅이 된다. 샤워를 하고 나면 빨래는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날 냄새나는 옷을 입고 걸어야한다(고백건대 완주하는 동안 두어 번 샤워와 빨래를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게 있다. 그것은 발을 말리는 일이었다.

물집 때문이다. 명주실과 바늘. 밴드는 필수품이다. 준비해가기는 했지만 ‘만약’을 위해서였다. 나는 물집이 잡히지 않을 줄 알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잡힐 만큼 잡혔다. 기타 코드를 짚는 손가락에 생기는 굳은살처럼 발가락도 물집 다음에 단단한 피부로 덮일 줄 알았다. 착오였다. 하이힐을 오랫동안 신어 발바닥에 잡힌 굳은살 아래로 물집이 잡혀 물에 토마토 껍질 벗겨지듯 피부가 벗겨지는 것을 순례길을 걸으면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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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걷다가 몸이 아프면 제일 가까운 도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제법 큰 세 도시를 지난다.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이다. 대부분 순례길은 시골 마을에서 마을로 길이 있어 약국과 달리 병원은 쉽게 갈 수가 없다. 한국 음식이 그립다면 대도시에 있는 중국인 상점에 가면 된다. 김치는 없지만 라면이나 고추장 등 웬만한 것은 다 있다. 신발 밑창이 뜯어져서 신발을 새로 사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오래 걸어도 물집이 잡히지 않는 편한 신발이어야 한다. 물론 노천카페와 고급 숙박업소도 많다. 많은 사람들과 자야 하는 알베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하룻밤 정도는 사치를 부려도 된다. 풀장 딸린 호텔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대도시가 다음 목적지가 될 때면 순례자들이 으레 들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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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시작한 지 7일째 되는 날 나는 에스테야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빨래를 야외 건조대에 널자마자 그곳 의자에 앉아서 발을 말렸다. 왼쪽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 그 아래 발바닥에도 물집이 잡혔는데 터져 버렸다. 나는 물집이 잡혔을 때에도 터졌을 때에도 준비해간 밴드를 붙이고 걸었다. 그게 잘못된 처치라는 것을 한참 후에나 알았다. 밴드 접착 면이 문제였다. 매일 걷기 때문에 접착 부분도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켰다. 되레 물집이 더 커졌고 피부가 잘 찢어졌다.

이보다 재미있는 것은 첫날부터 함께 걸었던 이탈리아 출신 니콜라가 밥 먹으러가자고 했을 때 내가 내 발을 햇볕에 더 말려야한다면서 갈 수 없다고 하자, 그도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물집이 두 군데 잡혀 있었다. 그는 또 가까운 곳에서 해바라기하고 있는 이탈리아 남자를 불렀다. 그한테도 나에게 발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는 양쪽 뒤꿈치가 벗겨져서 붉은 살이 온통 드러나 있었다. 내가 놀라자 니콜라는 오른손 검지를 시계추처럼 흔들면서 물집 때문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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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의 말처럼 내내 모른 척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남이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내 것이었다. 그래서 컸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 고통에 충실한 순례자였다. 순례하면서 발가락 네 개가 빠졌다가 다시 났고 왼쪽 발바닥이 물집으로 벗겨졌다. 그때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동행자들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다. 그들과 헤어져서 혼자가 되는 길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 완주는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총 900km를 34일 동안 걷는 동안 7일을 뺀, 17일 동안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일로 인해 나는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갈 것이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