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을 사랑한 老 시인의 고백
겨울 나그네
손형섭 | 문학예술사 | 1만2000원
2023년 01월 12일(목) 15:55
겨울 나그네. 문학예술사 제공
겨울이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제격이다. 실연당한 주인공이 겨울에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느낀 감정을 담은 이 곡은 찬바람 부는 한겨울에 들어야 제맛이 난다.

올해로 꼭 여든 한 살을 맞는 손형섭 시인. 그의 4번째 시집 제목도 ‘겨울 나그네’다. 시인으로, 범부의 한사람으로 걸어온 생애, 인생의 겨울을 맞은 삶의 편린을 자신만의 언어로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것이 노 시인의 고백이다. 시집에는 자연에 투영된 화자의 심상과 인간의 생애가 담백하게 담겼다. 8순을 넘긴 시인의 연령을 상기시키는 듯 수록된 시도 모두 80편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시집의 표제인 3편의 ‘겨울 나그네’다. 자연현상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있듯 인생에도 유소년, 장년 그리고 노년의 변화를 겪는다는 손 시인은 인생이 저무는 노년을 ‘겨울’에 빗대었다. 시 속에서 드러나는 심상도 어느덧 ‘인생의 겨울’에 접어든 8순을 넘긴 자신이다. 만남이 있기에 떠남이 있다는 ‘회자정리’의 진리도 담담하게 녹여냈다.

“엄동설한/모진 추위에도/축복의 서설은 내려/그 눈 위로 여든 한 개의 내 발자국이 보이네…/나는 이제 겨울 나그네가 되어/하염없이 저무는/저녁노을에 물들고 있다/아 덧없는 세월은 가고/추억만이 노을에 저물어 가는가.”(겨울 나그네 1) 어느덧 맞게 된 인생의 겨울, 8순의 노 시인이 느끼는 의미와 감회가 새롭다.

‘시는 그 시인의 분신’이고 한다. 그의 시집도 대부분 화자인 시인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매서운 겨울, 혹독했던 지난 날의 겨울 위로 찾아온 오늘은 축복의 몸짓이면서 맑은 백설이다. 인간이 지닌 숙명적인 작별과 처절하고 애절한 생의 떠남에서 맞는 먹먹함도 그는 담담하고 평이한 시어를 활용해 ‘희망’으로 승화시킨다. 문학예술 발행인이면서 시인으로 활동하는 이일기 시인은 이런 그를 두고 ‘자연의 시인, 인생의 시인, 정감과 경겨움을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했다.

손 시인은 “거친 들녘에서 찬바람을 이기며 피어나는 꽃처럼 대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축복”이라며 “대자연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받아쓰고 내 감정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바라보고 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난해한 시보다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세월을 따라 두고두고 세간에 회자될 수 있는 시라면 더욱 좋겠다는 것이 손 시인의 소망이다.

평생 일상의 중심이었던 학문을 밀쳐두고 농업을 경영했다는 시인, 자연이 주는 대로 씨앗을 뿌리고, 남는 시간, 시 농사 한번 여물게 지어보고 싶다는 시인을 응원한다.

1942년 화순에서 태어난 손 시인은 전남대와 동 대학원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고 목포대에서 명예교수로 정년퇴직을 맞았다. 광주시 문인협회 이사와 광주시시인협회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용환 기자 yonghwan.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