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의 사진풍경81>순천 매곡등 주민학살지
2023년 01월 19일(목) 13:45
순천 매곡등 주민학살지
1948년 10월22일 총을 든 한 무리의 군인들이 있었다.

남의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캐먹더니 매산등으로 내려왔다.

갑작스러운 이들의 출현에 놀란 주민들이 구경삼아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주민들을 한데 모이게 하더니

담장과 고목나무 밑에 세우고 곧장 총을 난사했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27명의 양민들이 어처구니없게 죽었다.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던 어린이가 발에 총을 맞고 살아난 것이 유일하다.

왜 그랬을까.

왜 무담시 죽여야 했고, 죽어야 했을까.



이 참혹한 자리에서 용기 있게 시신들을 수습한 이가 있었다.

외국인 선교사 보이열 목사와 몇 명의 신도들이다.

페니실린 병에 죽은 자의 이름을 써 넣고 품안에 넣어 묻었던 것이

훗날 신원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 학살 현장에 지금은 페니실린 병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졌다.

순천에서의 양민학살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생목동 수박등을 비롯한 이곳저곳에서 많은 이들이 처형되었다.

물론 여순 무장봉기를 주도한 좌익세력과 부역자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들이라고 하겠지만,

마구잡이 식이다 보니 억울한 것은 순천에서만 천 명이 넘는 양민들이었다.



세월이 약이었는가.

부모형제를 억울하게 잃고도 아무 말도 못하고 죄인처럼 살아오지 않았던가.

늦었지만 2021년 ‘여순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그 진실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사건 발생 74년만에야

이 참혹한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생겨나고 있어

여순사건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숙제로 진행형이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