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토끼의 지혜로 2023년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토끼에 대한 명상
지혜의 반대말은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별주부의 어리석음과 토끼의 지혜, 2023년 검은 토끼의 해, 눈 지그시 감고 <수궁가>를 듣는다.
2023년 01월 19일(목) 14:53
민화 약방아 찧는 토끼(19세기, 개인소장), 월간민화 정병모 글에서 발췌
“좌우 나졸(邏卒) 금군 모조리 순령(巡令) 일시에 내달아 토끼를 에워쌀 제 진황(秦皇) 만리장성 싸듯, 산양 싸움에 마초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겹쳐 잡는 거동 영문 출사 도적 싸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이놈 네가 토끼냐? 토끼 기가 막혀 벌렁벌렁 떨며, 토끼 아니오,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 달음에 너를 잡아 약개장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어 오계탕 달여 먹고 네 껍질 벗겨내야 잘양 모아 깔게 되면 응혈 내종 혈담에는 만병회춘의 명약이라 이 강아지 몰고 가자~” 김준수가 <풍류대전>에 나와 사물놀이패와 함께 노래했던 <수궁가>의 한 대목이다. 이로 인해 판소리 <수궁가>가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송가인이 남도트로트를 불러 <판소리>를 만방에 알리게 된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날치패가 ‘범내려온다’로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것을 포함하면 지난 몇 년 간 판소리 <수궁가>의 전성시대였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2023년을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니, 토끼나 거북이의 전성시대가 이어지거나 혹은 더 기운 생동한 해를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토끼의 지혜와 자라의 어리석음

<수궁가>는 토끼전, 토생원전, 토끼의 간, 토별가, 별주부전, 불로초, 토별산수록, 별토문답, 수궁용왕전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승해온다. <구토지설(龜兎之設)>과 여러 버전의 구전설화들이 있다. <<삼국사기>> <김유신조> 얘기가 대표적이다. 백제군에게 몰린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고구려 보장왕은 김춘추를 옥에 가둬버린다. 보장왕의 총신 선도해가 김춘추를 찾아와 얘기를 전해준다.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병이 들어 명약인 토끼의 간을 구하고자 한다. 거북이가 육지로 나가 갖은 속임수를 써서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간다. 이를 알아차린 토끼가, 마침 간을 씻어 말리려고 바위에 널어두고 왔다고 속인다. 육지로 나온 토끼는 거북이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며 달아나 버린다.” 김춘추는 이 이야기를 듣고 ‘왕의 허락을 받아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고구려를 탈출한다. 어찌 보면 이 속임수를 시작으로 삼국통일도 하고 왕도 되었을 것이다. <구토지설>은 불전설화 중의 하나인 용원(龍猿, 용과 원숭이)설화가 모본이다. 인도에서는 용을 악어로 풀이한다. 대강의 내용은 이러하다. “부처님이 전생에 바라나시에서 원숭이로 태어났다. 갠지스강 근처의 악어와 친구로 지냈다. 어느 날 악어의 부인이 남편에게 원숭이의 염통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남편 악어는 원숭이를 꾀어 물속으로 태우고 오다가 이 사실을 말해버린다. 원숭이는 자신의 염통을 나무에 걸어두고 왔다고 속이고 숲으로 되돌아와 목숨을 구한다. 악어의 빈천한 어리석음과 원숭이의 지혜가 대비된다. 부처님 <본생담> 세 부분에 전하는 이 이야기는 <육도집경>에서는 원숭이와 자라 이야기로 나타난다. 이 설화가 ‘구토설화’로 변이되면서 토끼로 변하고 염통이 간으로 변한 것이다.

인도의 악어가 자라(별주부)로 변하고 원숭이가 토끼로 변하며, 염통(심장)이 간(肝臟)으로 변한 이유가 있다. 하나의 단서를 고구려 고분벽화의 삼족오와 두꺼비에서 찾을 수 있다. 해와 달의 상징, 활을 잘 쏘는 예(?)와 부인 항아(姮娥)의 이야기가 그 하나다. 항아가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받아먹고 달에 올라가 두꺼비가 되었다. 그래서 월궁항아(月宮姮娥)라 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추석의 기원으로 삼는다. 그런데 어느 시기 고분벽화에 나오는 달의 상징 두꺼비가 방아 찧는 토끼로 변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불교의 전래와 부처님 전생담에 영향받았을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고려 중후기 <수월관음도>며 각양의 민화에 그려진 방아 찧는 토끼들을 살펴보면, 불교의 개입만으로 설명하기에는 2% 부족하다. 음양의 조화와 균형 즉 방아타령과 방아 찧기에 포섭된 풍요와 다산의 음양론이 밀접하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아타령과 방아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하겠다. 내가 두꺼비의 강 섬진(蟾津)에서 도깨비에 내포된 여성성을 찾아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련 내용은 졸저 <한국인은 도깨비와 함께 산다>(다할미디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또 하나의 단서는 부처님 <전생담> 스토리다. 어떤 수행자가 있었다. 이 수행자를 돕기 위해 원숭이는 과일을 따다 주고 수달은 물고기를 잡아다 주었다. 하지만 토끼는 공양할 것이 없었다. 토끼가 장작을 피워달라고 하더니 자기 몸을 던져 분신 공양을 해버렸다. 이 수행자를 제석신(帝釋神)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라고도 한다. 토끼의 소신(燒身) 정성이 애틋하여 달에 올라가게 되는데, 결국 음(陰)의 상징이 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의 흑점을 삼족오라는 기호로 읽고 달의 표면을 두꺼비나 토끼의 형태로 읽는 것은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본생담> 인도설화에서는 악어의 부인이 원숭이의 염통을 원한다. 마치 세례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전달하는 살로메처럼 말이다. <수궁가>에서는 용왕 혹은 용왕의 딸이 득병하여 토끼의 간을 원한다. 심장(염통)을 지킨 원숭이와 간장을 지킨 토끼를 지혜의 화신으로 본다면, 악어의 부인이나 용왕 혹은 그의 딸은 충신의 모델이기보다는 그 지혜를 없애거나 핍박하는 어리석음의 화신이다. 이 서사를 완성 시키는 또 하나의 장면은 상좌다툼이다. 비록 속임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사실은 토끼의 지혜를 드러내준다. 이 맥락이 아니라면 김춘추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문무대왕이 되는 서사의 단초를 <구토설화>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신라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기원전 3세기 훨씬 이전부터 부처님 본생담으로, 구토설화로, 17세기 전후 <수궁가>로 변이되면서도 꾸준하게 이야기되고 노래되 온 이유 말이다. <수궁가>는 오랜 세월 재구성되었기에 중층적인 의미들이 빼곡하게 포개져 있다. 지혜의 반대말은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별주부의 어리석음과 토끼의 지혜, 2023년 검은 토끼의 해를 어떻게 읽고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눈 지그시 감고 <수궁가>를 듣는다.


남도인문학팁

<수궁가> 상좌다툼 읽기

이날치패가 불러 일약 국민가요로 떠오른 ‘범내려온다’의 장면이 여기에 등장한다. 일명 상좌다툼이다. 서로 잘났다고 뻐기고 우기니 표면적으로는 나이를 따져 우열을 가리는 잇금(임금)논쟁인듯 보이지만, 토끼의 수난과 극복이 핵심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의 문제를 짚고 있다. 최혜진은 ?논쟁과 설득으로 본 <수궁가> 담화의 원리?(구비문학연구, 2017)에서 별주부가 토끼를 설득하는 과정, 토끼가 용왕을 설득하는 과정의 논쟁을 주목한다. 이를 통해 ‘설득’에 성공함으로써 <수궁가>의 서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상좌다툼>이다. 신재효가 정리한 창본에서는 곰이 이렇게 노래한다. “시속에 비하면 산군은 수령 같고 여우는 간물출패, 사냥개는 세도아전, 너구리 멧돼지며 쥐와 다람쥐는 굶지 않은 백성이라”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이 항목을 쓴 김동건은, 호랑이에게 수난당하는 동물들, 수탈과 억압이 가득 찬 사회 현실 고발과 지배층의 권위에 대한 대결의식의 표출이라고 말한다. 2023년 토끼의 해에 <수궁가>를 대입해도 이 풍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호랑이에 비유되는 권좌의 어리석음, 지배층의 무지와 속임수 따위에 대응하는 토끼의 지혜 말이다. 천년에 천년을 수도 없이 거듭했어도 지혜의 본질이 공동체의 수난과 극복에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토끼 얘기는 논쟁과 설득의 지혜를 달리 표현한 우화다.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