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일의 ‘색채 인문학’>고대의 퍼플… 가시 달팽이
(186) 보라색의 모든 것
박현일 <문화예술 기획자/철학박사·미학전공>
2023년 02월 07일(화) 13:18
●색의 어원

고대의 퍼플(purple)은 달팽이로 만들었고, 바다에 사는 퍼플달팽이의 집은 거친 가시와 파이프 모양의 꼬리가 있어 생물학자들은 이를 ‘가시 달팽이’라고 불렀다.

퍼플은 썩어가는 달팽이를 열흘 동안 불에 달여 졸이고, 이 추출물을 말린 색이다. 햇볕에 말리면 처음에는 초록색, 두 번째는 빨간색, 마지막에는 퍼플로 변한다. 퍼플은 햇볕에 의해서 생겨난 색이기 때문에 햇빛에 바라지 않으며, 영원을 상징한다.

퍼플의 톤은 달팽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며, 모렉스 트룬쿨루(Morex Trunculus) 달팽이와 모렉스 브란다리스(Morex Brandaris) 달팽이 2가지로 나뉜다. 전자 달팽이로 만든 퍼플은 빨간빛이 도는 보라색이고, 후자 달팽이로 만든 퍼플은 어두운 보라색이다. 어두운 퍼플이 가장 비쌌다.

보라색은 보랏빛 보석인 자수정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자수정이 애미시스트(amethyst)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단어의 어원 amethysos는 그리스어로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다.

고대 상류사회에서는 술잔을 자수정 잔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물을 따라도 포도주처럼 보인다. 술에 취하고 싶지 않으면 물만 마셔도 아무도 모른다.

보라색은 위대한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고대에는 지배자의 색과 권력의 색이었다. 고대의 보라색은 퍼플이다.

화학물질 요오드(iodine)는 바이올렛에서 나온 이름이다. 요오드의 어원 요온(ion)은 고대 그리스어로 바이올렛을 뜻한다. 요오드를 가열하면 바이올렛과 같은 보라색 증기가 발생한다.

보라와 연보라는 자연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색이며, 영어와 불어의 바이올렛(violet)은 보라를 나타내는 색이름인 동시에 꽃 이름이다. 라일락(영어의 lilac, 불어의 lilas)도 연보라를 나타내는 색이름이다.

바이올렛은 폭력의 언어도 있다. 이탈리아어 비올라(viola)는 바이올렛을 가리키지만 비올렌티아(violentia)는 폭력을, 비올라레(violare)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violence, violation도 폭력을 의미한다. 바이올렛과 폭력(권력)의 언어적 근접성은 바이올렛 퍼플(violet purple)이 지배자의 색이었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설명할 수 있다. 바이올렛의 색인 보라는 퍼플로 권력의 색이 되었고, 바이올렛의 이름은 폭력의 이름이 되었다.

보라색은 빨간색과 파란색,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혼합이다. 특히 보라색의 색채상징은 빨간색과 파란색 두 가지 대립에 의해서 결정된다.

●색채의 사회적 역사와 상징

보라색의 상징성은 창조, 우아, 신비, 예술, 고가, 위험, 신앙을 나타낸다. 보라색의 상징적 효과는 고독, 우아함, 화려함, 추함의 다양한 느낌, 신앙심과 예술적인 영감을 준다. 특히 붉은색이 많이 있는 보라색은 화려함과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보라는 영혼, 신비, 겸허함, 회한, 지혜와 연관되는 품위 있는 색이다. 연보라(mauve)색, 진한 자주(plum)색, 가지색(eggplant)과 그 외의 다른 음영의 보라색은 품위 있고 우아한 실내장식에 자주 이용된다.

보라색의 상징성과 연상 작용은 종교적 상징으로써 성자의 참회를 의미한다. 색채의 상징성과 연상 작용의 특성은 장엄, 풍요, 호화스러우며 인상적이다.

보라색의 특성은 파란색과 빨간색을 배합하여 만든 것이고, 이 2가지 색채의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빨간색에서 느낀 용감성과 정력, 파란색의 영적인 것과 숭고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색은 왕권의 색채이며, 고대 임금들이 애호하는 색이다. 특히 이 색의 특성은 차갑고 음성적이며, 후퇴하는 색이고, 파란색과 유사하지만 좀 더 침착하며 장엄하다. 이 색은 우울한 특질을 가졌으며, 불행과 단념을 암시한다.

슈펭글러(Spengler)는 보라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보라색은 빨간색이 파란색에게 압도당한 색이고, 성숙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으며, 독신생활을 하는 성직자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