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경한> 다중재난 앞에 놓인 인류, 예술로 모색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공존’
ACC 레지던시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 전시 리뷰
홍경한 미술평론가
2023년 02월 07일(화) 13:33
홍경한 평론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의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2022.12.16.~2023.2.5)는 ‘팬데믹’의 경험으로 인한 디지털 대전환과 함께 다중재난 앞에 놓인 인류에 적합한 휴머니즘을 살피는 전시다.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현존으로서의 인간을 넘어선 ‘신인류(Post human)’의 세계를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한 기획이다. 전시의 키워드는 ‘감각과 신체’ ‘인간과 기술의 연결’ ‘미래예측과 공생’이다. 공통적으론 ‘공존 방식’의 문제를 관통한다.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 기술의 역사와 예술의 역사가 하나의 범주로 묶여 있는 동시대에서 인간이 비인간 존재들과 어떻게 상호 호혜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생태적 시선이 녹아있다.

출품작은 모두 20여 점. 지난해 9월 주제 공모를 통해 선발한 ‘2022년 ACC 레지던시’ 참여자들이 약 4개월간 ACC와의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내놓은 실험적 결과물이다. 아트&테크, 비주얼아트, 다이얼로그, 디자인, 시어터 등 장르와 분야를 망라하는 이들의 작업은 ‘포스트 코로나, 포스트 휴먼’이라는 주제에 맞게 인간에 의해 제한되고 대상화된 존재들(AI, 인공생명체, 동물, 자연 등)을 끌어들여 새로운 교감을 도모하는 방식을 띤다.

대표작은 공간·인류·기계 영역의 한계를 허물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로드리고 마린 바리쎄뇨’의 <한계의 전환: 상상의 집 시리즈>(2022)를 비롯해, 건축·환경·집단 사회 간의 절대적이고 체계적으로 동기화 된 이상적 미래도시를 초현실적으로 설계한 ‘브이 에이 앤 에이’의 <플라텐로투스>(2022), 전쟁·민주항쟁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을 가상현실(VR)로 기록하며 삶과 죽음, 실존적 의미를 추적한 ‘오 덧 아(().(:))’의 <고스트 유토피아>(2022) 등이다. 이밖에도 근현대 시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스트 휴먼 메타 데이터를 가변설치 작업으로 드러냄으로써 금기된 정보의 민주주의적 가능성을 살펴본 가수정 작가의 <금/서 이미지 라이브러리: 망가>(2022) 등도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이샘의 <인류원, 고유모션과 대기모션>(2022), 유승아의 <취약성을 공유하는 포스트 휴먼, 한국 퍼포먼스 아트 속 괴물과 사이보그>(2022)와 같은 작품도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들 작업은 하나같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경계를 살피고 포스트 휴먼의 윤리적 성찰과 실천적 방안을 모색한다. 인간과 기술 간 관계를 재설정하거나 미래의 인간·사회·자연·생명 등 새로운 인간 존재에 대한 정의를 다면적 조형으로 그려낸다. 특히 초연결 시대에서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는지를 각자의 언어로 설명하는 장면은 눈여겨봐야할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당대 인류 앞에 놓인 문제를 다층적으로 해석하며 자기중심적 인간의 재고와 타 존재에 대한 고찰에 방점을 둔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는 미래 예술을 향한 갈망과 고정된 예술 언어에 저항하는 태도까지 아우른 인문학적 시도와 다름 아니다. 그리고 시각·과학·디자인·생물학·지리학·역사·철학·인문사회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가 만나 폭넓게 교류하면서 대화하는 무대였다는 것만으로도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트 휴먼 2022>의 ‘의의’는 완성된다.

한편 통상의 레지던시들이 고만고만한 프로그램으로 ‘한계’를 자각하는 현재, 기술과 인지 간 격차에 의해 발생하는 ‘문화적 지연’을 탐구하고 참신한 인재를 발굴·지원·육성하기 위한 ‘ACC 레지던시’의 여러 실험적인 몸짓은 ‘레지던시 4.0’시대가 나아갈 방향을 점치게 한다. 실제로 지난 2015년부터 예술의 창의성과 기술을 융합한 창·제작․연구 플랫폼을 운영해온 ACC는 물리적 지원 외에도 초학제 연구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단순한 작가지원의 성격을 벗어나 다제학문의 협동·협업 관계설정을 통해 새로운 시지각적 어젠다(agenda)를 도출하려는 게 목적이다. 올해는 학제 간 교류와 소통 확대 차원에서 보다 전문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을 전개한다. 바로 ‘듣기의 미래(Future of Listening)’를 주제로 한 ‘ACC 사운드 아트랩(ACC소리예술연구소)’이다. 아시아 도시를 중심으로 한 다년(多年) 소리 연구에 해당하는 ‘듣기의 미래’는 데이터의 청각화와 같이 ‘듣기’의 개념을 재조명하고 청각예술의 내일을 상상함으로서 청각에 관한 인식과 가치를 찾아내기 위한 흥미로운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