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유능한 정치가 있는가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2023년 02월 09일(목) 13:31
김선욱 부국장
요즘 서민 경제에는 암울한 소식뿐이다. ‘난방비 폭탄’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큰 폭의 전기료 인상에 이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대기중이다. 상하수도 요금과 종량제 봉투, 주차요금도 줄줄이 인상이 예고됐다. 생필품 가격 인상도 이어졌다.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등 안 오른게 없다. 외식 물가도 치솟았다. 지난해 연간 외식물가 평균 상승률은 7.7%였다. 1992년 10.3% 이후 30년 만에 최고치다. 정부는 “하반기 부터는 안정된다”고 성난 민심을 다독였다. 과연 믿을수 있는 말인가.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등 수출 감소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하다. 작년 4분기, 수출과 소비가 꺾이고 투자마저 부진해 ‘트리플 한파’가 몰아쳤다. 수출은 코로나19때를 제외하면 37년 만에 최악이다. 작년 연간 무역적자는 475억 달러(약60조원)로 사상 최대였다. 14년만에 적자로 한해를 마감했다. 새해에는 더 큰 한파가 닥쳤다. 1월 무역적자는 역대 최대 126억9000만달러(15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11개월째 ‘적자행진’이다. 수출 악화-벌어들이는 달러 부족(외환보유고 감소 위기)-재고 증가-기업 투자 위축의 악순환이다. 그래도, 정부는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누가 봐도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데, 정부 판단을 그대로 믿을 국민이 몇명이나 될까 싶다.

‘제2의 IMF’라는 경고등이 우리 앞에 켜졌다. 그런데 위기에 대응하고 정부와 머리를 맞대 헤쳐 나아가야할 정치는 실종됐다. 여전히 지난 대선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과 거대 야당 대표로 다시 만난 ‘윤석열 대 이재명’의 극한 대결 시즌2가 정국을 집어 삼키는 형국이다. 협치는 사라졌고, 대치 전선만 굳어졌다. 우리의 최대 위기는 경제 보다는 정치 위기, 정당 위기 같다. 도대체 정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집권여당의 정치는 괴이해 보이기 까지한다. 야권에선 국민의힘이 아니라 ‘용산의힘’이라고 비아냥댄다. 이준석 전 당 대표, ‘내부 총질하던’ 대표 몰아내기, 나경원 전 의원 전당대회 불출마, 친윤계의 당권주자 안철수 의원 맹폭. 윤석열 대통령의 과한 ‘당무 개입’ 논란이 뜨겁다. 대통령이 의중을 흘리면 친윤계 당 지도부가 나서 전당대회 규칙도 바꾸고, ‘당권 의중’에 반한 자는 찍어 내린다. 새내기 초선 의원들도 덩달아 춤춘다. 이른바 ‘연판장 돌리기’ 정치로 나 전 의원의 ‘전당행’을 좌절시켰다. 권력자의 내년 총선 공천 줄세우기 인지, 그들이 알아서 권력에 줄을 서는 것인지, 기괴한 광경이다. 과거 보수정당의 역동성은 어디로 갔는가. 오히려 정당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오는 3월 ‘친윤 당권’이 구축될 때까지 ‘반윤 낙인 찍기’는 진행형이 될 것 같다.

원내 제1 야당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첫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었다. 윤석열 정부의 민생파탄, 검사독재를 막고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전국의 당원들이 한데 모였다. 이 대표 검찰 수사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다. 여권에선 민심에 눈과 귀를 닫은 ‘이재명 방탄용 집회’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현장에서 민심을 듣겠다며 이 대표 주도로 경청 투어를 해왔다. 고금리·고물가로 시름하는 서민들의 아우성을 들었을텐데, 선택은 ‘국민 속으로’가 아닌 ‘여의도 밖으로’였다. 개헌만 빼고 원하면 뭐든 처리할수 있는 과반 의석(169석)의 다수당이 장외투쟁에 당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이게 ‘민주당의 길’인지,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과반 의석을 줬는데도 거리로 나가면, 내년 총선에서는 몇 석을 더 달라고 해야하는지 묻고 싶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비상대책위 체제인 여당 보다 낮거나 엇비슷한 지지율이 나오는 이유를 곱씹어 봤으면 한다.

전당대회를 앞둔 여당은 ‘윤심’을 놓고 서로 뜯고 싸우고, 제1야당은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커지자 대여 투쟁을 위해 여의도를 뛰쳐 나왔다. 여당은 대통령이란 이름의, 제1야당은 당 대표라는 이름의 새장 안에 갇혀 있는 꼴이다. 미래와 희망이 없는 ‘그들만의 정치’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씁쓸하다. 이러니 우리 앞에 닥친 대내외적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정부의 말만 믿고 안심하고 있기에는, 우리의 살을 에는 ‘공공요금발’ 고물가와 고금리의 칼바람이 너무 매섭다. 불확실성의 경제 위기 앞에서, 국민들은 각자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유능한 정치, 건강한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가 싶다. 국민들의 시름이 깊어가는 시린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