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타로의 조언
2023년 03월 07일(화) 17:17
이용환 논설위원.
“나는 서른셋, 지방대학 시간강사다. 내가 졸업한 대학에서 1주일에 4학점 인문학 강의를 한다. 내가 강의하는 학교의 강사료는 시간당 5만 원이다. 1주일에 20만 원, 한 달에 80만 원을 번다. 그 나마 방학엔 강의가 없다. 그 돈으로 학자금 대출에서 한 달 20만 원을 떼어 가고, 대출금 상환과 공과금을 더하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10만 원이 고작이다. 이 걸로 남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신용 등급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내가 88만 원 세대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제자들은 알까.”

지난 2015년 김민섭이 펴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대학에서 비정규직 시간강사로 일하는 저자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저자가 본 지방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 절대 아니었다. 기민하게 자본의 논리에 영합해 인문학은 돈 안 되는 학문으로 폄훼하고 대학원생도 ‘열정 페이’만 강요받는다. 사회의 최소 안전망인 4대 보험도 당연히 제외된다. ‘신자유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의 민낯이면서 신자유주의가 바꾼 필연적인 풍경’이라는 게 저자가 평가하는 지방대학의 얼굴이다.

불과 30여 년 전인 1994년. 일본 최고의 사립대인 와세다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차입금만 390억 엔. 획일적인 교육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영으로 일관했던 와세다 의 면면을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수많은 낭비와 교직원의 특권, 인건비도 과다했다. 이 때 등장한 이가 증권사 출신 세키 쇼타로. 그는 취임하자마자 모든 특권을 박탈하고 필요없는 경비를 삭감했다. 대신 와세다의 정신을 살리고 학생을 위한 투자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노력으로 파산위기에 몰렸던 와세다는 지금 일본에서 제일 건강한 대학으로 성장했다. (세키 쇼타로 著 와세다 대학의 개혁)

신학기를 맞아 대다수 광주·전남지역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개강을 맞았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은 학생 수 감소와 수도권 집중이다. 대학 스스로의 경쟁력이 떨어진 탓도 크다. ‘와세다 대학의 개혁’을 번역한 당시 부산대 전호환 총장은 “대학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지 말고 대학 구성원 스스로 개혁과 혁신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88만 원 세대보다 더 힘들게 사는 시간 강사, 자본에 영합한 신자유주의는 지금의 지방대를 만든 주범이다. 지방대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대학의 가치는 대학 스스로 만든 다’는 쇼타로의 조언이 묵직하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