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 시대
최권범 경제부장 겸 뉴스콘텐츠부장
2023년 03월 08일(수) 13:04
최권범 부장
지난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본업 외에 직업을 하나 더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투잡스(Two Jobs)’족이 많이 생겨났다.

굴지의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등 고용불안이 심화된 데 따른 현상이었다. 당시 일반 직장인은 물론 전문직 종사자들도 ‘투잡’을 뛰는 모습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선 ‘투잡스’를 뛰어 넘은 ‘N잡러’가 등장했다. ‘N잡러’는 2개 이상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2개 이상의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N잡러’는 청년층에서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19세부터 34세까지 청년 취업자 10명 중 4명은 2개 이상의 일자리를 가진 ‘N잡러’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 대상자 중에는 6개 이상의 일자리를 가진 청년도 8.5%에 달했다.

‘N잡러’ 증가는 고용형태의 다변화, 코로나19 장기화, 비대면 문화 확산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2018년 이후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을 메꾸기 위해 부업을 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주된 배경에는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청년세대들의 달라진 직업관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금리와 물가가 치솟으면서 고용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쳐 고용불안이 심각해졌다. ‘N잡러’의 증가는 이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월급만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고, 또 원하는 삶을 살기도 힘들어 여러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직장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식이 강해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청년층의 이직이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불안한 경제상황이 이어지고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N잡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