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혁명의 씨앗’… 새 세상을 꿈꾸는 민중의 도전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프랑스 혁명정신 선구자 ‘보마르쉐’ 원작
천재 작곡가의 18세기 대표 오페라 명성
풍자·희극적 요소 결합… 귀족사회 비판
아리아·중창 등 ‘음악적 완성도’ 뛰어나
2023년 03월 09일(목) 13:37
2019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공연된 오페라 ‘피가로’ 중 결혼식 장면. 출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역사는 혁명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문화혁명, 4차 산업혁명 등 긍정이든 부정적 변화든 급격한 변화에 혁명이라는 단어는 항상 단골로 등장한다. 이러한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가늠하는 경계에 놓인 사회는 폭발을 앞두고 억눌린 다양한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어 불안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보이는 전조 현상과 같이, 변화를 앞둔 사회 안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안에 태동되는 담론과 시대정신이 혁명의 전조를 이야기하고 있다.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시대의 변화 선상에 서 있는 경계인이었다. 그는 후배 베토벤과 같이 프리랜서로 귀족이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부르주아지의 후원으로 자신의 예술성을 속박 없이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삶을 영위해 왔다. 당시 대부분 예술가는 왕족이나 지배 세력 아래에서 그들의 구미에 맞는 작품을 주문 제작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며, 평민 출신 모차르트는 과도기 지배 세력과 프리랜서의 경계 선상에서 양쪽에 발을 걸치며 살아왔다. 그는 경계인으로 어느 쪽에 서지 못하고 자신이 표방하길 원했던 이야기들을 교묘히 오페라에 담곤 했다.

1789년 유럽을 뒤흔들었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상업자본주의 발달로 인한 부르주아지 계급이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하고 이와 함께 사회에 급속하게 파급된 계몽주의는 자유와 평등사상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부패한 왕실을 비난하고, 불평등한 피지배 서민층의 불만은 당시 지식인들의 문학작품과 문화예술로 표현돼 혁명의 불씨를 달구었다.

프랑스 혁명정신의 선구자였던 극작가 보마르쉐(Pierre Agustin Caron Beaumarchais, 1732-1799)는 사상적으로 귀족제도에 대한 불만을 담은 희곡을 많이 썼으며, 그는 왕실과 귀족의 경계 대상이었다. 당시 군사 우리나라 독재 시절 못지않게 검열이 철저했는데, 왕실에 그의 작품은 경계 대상 1순위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 ‘피가로의 결혼’을 읽고 매료된 모차르트는 대본가 다 폰테와 함께 오스트리아 왕실을 설득하기로 맘을 먹었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상연금지였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의 오페라화는 황제 요제프 2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수완가로 알려진 대본가 다 폰테가 이런 황제에게 “사회에 반하는 미풍양속과 도덕을 해치는 부분을 다 빼고 정리했다”라며 간곡히 설득해 드디어 작품을 제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019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공연된 오페라 ‘피가로’ 중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식 장면. 출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초연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3년 전 1786년 빈에서 이뤄졌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 작품은 유럽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됐으며, 아직 모짜르트 오페라 중 가장 사랑을 받고 자주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다 폰테에 의해 사상적으로 사회에 던져주는 평등에 관한 메시지는 제거됐다고 말하지만, 모차르트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교묘히 작품 안에 나열한 것을 알 수 있다. 경계인 모차르트의 분노와 갈등을 겪으며 살았던 그의 메시지가 주인공 피가로의 입을 통해 나왔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피가로의 아리아 ‘백작님 춤을 추시길 원한다면’에서는 계급에 대한 도전과 비판이 날카롭게 스며들어 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가벼운 코미디극이다. 전편에서 백작은 사랑하는 여인 로지나를 차지하기 위해 피가로를 비롯한 주변 모든 세력을 돈으로 매수해서 사랑을 차지고, 가정을 이뤘다. 이 결혼에 큰 공을 이룬 피가로는 백작의 하인이 됐고 하인이 된 피가로의 활약이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시작이다.

피가로는 하녀 수잔나와 결혼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를 눈여겨봤던, 백작은 ‘영주가 신랑에 앞서 신부와 동침을 할 수 있는 권리’인 폐지된 ‘초야권’을 들먹이며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이 계략을 묘수로 물리치려는 반 백작 서민 연대인 피가로, 수잔나, 백작 부인의 기지가 멋지게 보인다. 백작 부인 앞에서 무릎을 꿇은 백작, 그리고 그를 용서하는 아량을 보이는 서민 출신 백작 부인은 승리하는 시민 계급을 연상케 만든다. 마지막은 용서와 화합의 합창으로 끝나지만, 항상 군림하던 왕실과 귀족들에게는 껄끄러운 엔딩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부르주아지 계급을 비롯한 시민 계급의 확장과 상승에 초조해하던 왕실과 귀족들에게는 불편한 내용이 곳곳에 교묘히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상연 금지된 작품이어서 정화를 했다고 하지만 작품 안에 숨어 있는 시대정신까지 지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웃음으로 포장된 해학 안에 혁명의 기품을 내재한 ‘피가로의 결혼’은 유럽의 곳곳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변해야 하는 세상의 당위성에 대해 선전을 하는 셈이었다.

2019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공연된 오페라 ‘피가로’ 중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식 장면. 출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 중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켰다. 자신이 가장 애정을 가진 인물인 ‘케루비노’는 시동이다. 10대의 미소년이지만 여성이 이 역할을 연주한다. 케루비노는 극 중 모든 여인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제 성에 눈뜨기 시작한 그의 정체성은 마치 당시 혼란의 격변기를 대변하는듯한 캐릭터라 말 할 수 있다. 마치 경계인 모차르트의 모습과 당시 경계에 놓인 시대를 표현해 놓는 듯하다.

‘피가로의 결혼’은 모든 역할에 멋진 아리아가 하나씩 배정돼 있다. 그래서 좋은 가수들을 영입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모차르트의 지혜가 돋보인다. 베르디나 푸치니처럼 주역 가수의 실력이 오페라를 흔들어 놓지 못한다. 부족하더라도 모든 배역이 함께 채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피가로의 결혼’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아리아와 중창들로 가득 채워졌다. 모든 곡이 주옥같으며, 통통 튀기는 해학적인 코드를 담았다가, 수려한 선율을 통해 이상 실현을 담으려는 열정도 선보이곤 한다. 화합의 메시지는 정량된 화음의 정열을 통해 보다 효과적이며 탄탄한 고전주의 시대 음악을 돋보이게 한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의 2중창. 출처 영국로열오페라단
인간으로 태어나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만난다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는 천재 작곡가의 모차르트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음악적 완성도부터 대본을 이해하고 시대정신을 담고, 그리고 웃음의 결말까지, 과거 유럽에 있었던 풍자극이지만 격변의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에게 현자의 지혜를 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유와 함께 만나보는 ‘피가로의 결혼’ 지관은 아닐지라도 하이라이트 음원을 통해 음악의 현자가 주는 메시지를 들어보는 것도 멋질 듯하다. 최철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최철


◇추천하는 명곡 : Sull’aria(편지 이중창), 영화 쇼생크 탈출의 OST로 잘 알려진 명곡, 수잔나와 백작 부인이 바람둥이 백작을 올가미에 가두려는 계략을 나누며 부르는 듀엣/도이치그라마폰 2006년,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백작 부인역 키리테 카나와, 수잔나역 미렐라 프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