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한기 농촌 파고든 '불법도박'…살인까지 불러
'윷놀이' 도박판서 돈 잃은 60대
다투던 지인 몸에 불 붙여 살인
전남 도박 한해 평균 200건 이상
2023년 03월 23일(목) 18:30
경찰 마크.
고흥의 한 마을에서 도박 중 살인 사건이 발생해 세간에 충격을 주는 가운데, 농한기를 맞아 농촌에서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리며 강력범죄 위험이 커지고 있다.

23일 고흥경찰은 윷놀이를 하다 다투던 지인의 몸에 불을 붙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A(62)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1월4일 고흥군 녹동 한 마을의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동네 지인인 B(71)씨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혐의다.

조사 결과, A씨는 B씨를 포함한 6명과 함께 수십여만원의 돈을 걸고 윷놀이를 하던 중 B씨가 100여만원의 돈을 따고 자리를 뜨려 하자 크게 다투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A씨와 일행들은 경찰·119구급대에 신고하지 않고 화상을 입은 B씨를 자신들의 승용차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B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다가 사건 발생 넉 달 뒤인 이달 20일 패혈증으로 숨졌다.

경찰은 B씨의 죽음이 일반적인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닌 강력사건이라는 첩보를 입수, 경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A씨의 범행 정황을 확인했다.

그동안 일행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은 A씨가 함께 있던 지인들에게 ‘모른 척해달라’는 취지로 회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범행을 일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이날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며 기각하자 내용을 보강해 재청구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농한기에 농촌 도박이 성행하면서 관련 폭력, 절도 등 범죄도 덩달아 늘어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경찰청 누리집에 공개된 통계를 살펴보면, 전남에서 최근 5년간 적발된 도박 건수는 △2018년 249건 △2019년 260건 △2020년 193건 △2021년 243건 △2022년 124건이다.

지난해의 경우 △1분기 43건 △2분기 22건 △3분기 33건 △4분기 26건으로 추수가 끝난 후부터 모내기 전 기간인 1분기에 도박이 집중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수사도 쉽지 않다. 전남과 같은 농촌 밀집 지역은 주민들끼리의 윷놀이, 화투 등의 모습으로 도박 범죄가 일어나기 때문에 적발이 어려운 실정이다. 앞서 고흥의 사례처럼 도박 중 강력 범죄가 벌어지더라도 처벌이 두려워 서로 합의하거나 범죄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많다.

특히 농촌 도박은 수십여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작지 않고, 인적이 드물거나 동네 주민만 아는 사랑방 등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여러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도박은 중독성이 강해 개인 파멸에 이를 수 있는 중대 범죄”라며 “농한기 성행하는 도박을 예방하기 위해 경찰도 단속 등 노력을 기울이고, 농촌 주민들도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