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징용 피해자, 전범기업 특허권 가집행한다
미쓰비시중공업 특허권 6억8000여만원
제3자 배상안 거부… 미룬 집행권리 행사
2023년 03월 26일(일) 17:42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이 지난 21일 광주시의회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나건호 기자
정부가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책임을 한국기업이 대신 떠안는 ‘제3자 배상안’을 추진하려 하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을 가집행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에 이어 故 박해옥 할머니의 유족이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정부와 피해자 간의 대립이 깊어지고 있다.

26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의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양영수 할머니 등 원고 4명은 지난 24일 소송대리인을 통해 미쓰비시중공업이 소유한 국내 자산에 대해 ‘특허권 압류 및 특별현금화명령’을 특허청이 위치한 관할 법원인 대전지법에 신청했다.

가집행은 가집행 선고가 있는 판결에 의한 강제집행을 뜻한다. 판결 확정이 늦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승소자의 불이익을 면하게 하기 위한 제도로, 이번 압류 대상은 원고 1명 당 미쓰비시중공업 특허권 각 1건 등 총 4건이다. 4명의 채권액은 1심 판결에서 선고된 배상액과 지연 이자 등을 합해 약 6억8700만원이다.

소송 원고들은 지난 2014년 2월과 2015년 5월 광주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제강제동원 피해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해, 각각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함에 따라, 이들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된 지 4년 3~4개월에 이르렀다.

시민모임은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4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판결이 요원한 상황인데다, 우리 정부가 제3자 배상안으로 원고들의 소송 취지를 왜곡하는 방식의 정치적 타결을 서두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권리행사를 미룰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강제집행에 나서게 됐다”고 이유를 전했다.

한편 대리인은 제3자 배상을 대신 진행하기로 알려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피해생존자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에 이어 지난 14일 원고 故 박해옥 할머니의 유족의 동의를 받아 “유족 의사에 반해 제3자 변제를 하지 말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소송대리인 측은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가지는 채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제3자가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변제하여 소멸시켜도 되는 성질의 채권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