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깡’ 등 불법대출에 빠진 청년들
본인 명의로 개통하면 현금 지급
소액결제·대포폰 사용 부채 늘어
광주·전라 4명 중 1명 “알아봤다”
SNS서 접촉…‘범죄’ 인식 약해
전문가 “불법금융 범죄 강화해야”
2023년 03월 27일(월) 18:38
클립아트코리아
#연극단에서 무대 설치 일을 하던 시민 임모(21)씨는 무릎과 허리 부상으로 직장을 퇴사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100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휴대폰 개통만 하면 돈을 빌려준다’는 이른바 ‘내구제 대출’을 접하게 됐다. 임씨는 ‘잔액이 없는 통장에서 요금을 빠져나가게 하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브로커의 말에 혹해 휴대폰을 개통해 500만원을 받았다. 6개월 뒤 임씨에게 채권 추심 우편물이 날아왔다. 그가 상환해야 할 부채는 1700만원이었다.

# 광주에서 전화 상담 등을 하며 최저 임금을 받던 김모(23)씨는 입사 2개월 만에 회사가 폐업해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당장 월세와 생활비 등을 마련할 방법을 찾다 휴대폰 1대를 개통하면 9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인터넷 게시물을 보고 비대면으로 2대의 휴대폰을 개통했다. 몇개월 뒤 김씨는 400만원이 찍힌 고지서를 받았다.

최근 청년 사이에서 이른바 ‘내구제 대출’이라 불리는 불법사금융이 성행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책임부처 지정 및 불법업자 제재를 위한 법 개정 등을 통해 범죄를 사전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27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청지트) 등에 따르면, ‘내구제 대출’이란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의 줄임말로 본인 명의로 개통한 휴대폰이나 유심(USIM)을 브로커에게 넘겨 수수료를 뗀 일정 금액을 받는 불법사금융이다. ‘휴대폰깡’이라고도 하는데, 급하게 소액 자금이 필요하지만 낮은 신용등급 등을 이유로 합법적인 대출이 어려운 이들이 주로 사용한다.

브로커들은 위 사례처럼 ‘기계만 주면 현금을 주겠다’고 현혹하지만, 개통 후 해당 휴대폰으로 수백만원 가량의 소액결제를 하거나 대포폰으로 사용한다. 결국 대출자들은 고금리 대출에 준하는 부채를 떠안게 된다.

이런 현상은 지역에도 깊게 파고든 것으로 나타났다. 청지트가 이달 발표한 ‘내구제 대출 초기 인식조사 및 피해 사례 조사’에 따르면, 지역별로 내구제 대출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광주·전라(전남·북)의 경우 25.3%가 ‘내구제 대출을 알아본 적 있다’고 응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인식조사 연령별 분석을 보면 20대 23.4%, 30대 26.6%가 내구제 대출을 알아본 적 있는 것으로 분석돼 피해자의 주 연령층은 2030세대로 확인됐다.

여기에 내구제 대출이 범죄임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모른다’고 답한 광주·전라 응답자는 전국 평균보다 9.4% 높은 79.5%로 집계돼, 범죄 인식이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2030세대가 주요 피해 층이 되는 이유는 포털사이트나 SNS 광고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등 젊은층이 주로 사용하는 SNS에 ‘급전’, ‘학생대출’ 등을 검색하면 ‘폰테크’ 등의 이름으로 내구제 대출 홍보 게시물을 여러 개 찾을 수 있다. 해당 게시물들에는 내구제 대출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럼에도 처벌은 물론 신고조차 힘들다. 해당 사안과 관련한 법은 전기통신사업법 32조의4뿐인데, 이에 따르면 ‘휴대폰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사람’이 이동통신단말장치 부정이용 혐의로 처벌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 내구제 대출의 1인당 피해 금액 평균은 409만7000원, 휴대폰 개설 수는 평균 3.3대다. 피해 금액이 2800만원에 달하거나 10대 이상 휴대폰이 개통된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사전 개입을 통해 내구제 대출을 근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수민 청지트 이사장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내구제 대출이 성행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5060세대의 피해도 적지 않게 확인된다”며 “중앙 정부 차원에서 통합대응이 가능한 협의기구를 만들고, 불법업자 제재를 위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박 이사장은 “긴급 대출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공공 금융 상품이 아닌 불법 금융이 노출된다. SNS가 대출 중계 플랫폼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라인 불법금융 광고 사전 차단 및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휴대폰 개통 시스템 다수 회선 개통 시 경고 및 인증시스템 도입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청지트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금융감독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함께 ‘내구제 대출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