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부터 밤샘대기… 전쟁터 된 ‘아동병원’
● 광주 소아과 접수 대기현장 가보니
봄철·환절기에 영유아 질병 급증
병원 줄고 아이 몰려 부모도 전쟁
입원·진료 위해 수시간도 기다려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지원 절실”
2023년 04월 25일(화) 18:37
25일 광주 광산구의 한 아동병원의 문이 열리자 대기표를 뽑기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박소영 수습기자
25일 광주 서구의 한 아동병원에서 영업 시간 전부터 대기표를 일찍 뽑기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김혜인 기자
“아이가 아파서 새벽 2시30분에 병원에 왔는데도 제 앞으로 3명이나 있네요.”

소아청소년과 동네 병원이 점차 줄어든 가운데 감기, 독감이 유행하는 환절기를 맞아 아픈 자녀를 데리고 부모들이 매일 병원에서 번호표를 뽑기 위한 밤샘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아과 병원이나 의사들의 부족도 이런 현상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소아청소년과 의료 확대를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25일 오전 5시께 광주 서구의 한 아동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해당 병원의 문이 열리는 시간은 오전 7시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접수하기 위해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들은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캠핑용 의자를 펼쳐 앉아있거나 담요를 덮고 보온병에 담은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시기도 했다.

오전 2시에 도착해 문 앞에서 1등으로 기다리던 박선애(35)씨는 “첫째 아들이 수족구에 걸려 열이 39.3도까지 올라 입원을 해야한다. 수족구가 감염 위험이 높아서 격리병동을 얻으려면 무조건 일찍 올 수 밖에 없었다”며 “남편이 먼저 자리를 잡고 2시간을 기다렸다가 4시쯤에 교대했다”고 말했다.

광산구 첨단지구에서 아이를 안고 병원에 온 정모(33)씨 또한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심정이다. 정씨는 “5시쯤 도착했더니 이미 입원병동을 예약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며 “아이가 폐렴에 걸려 계속 기침을 하길래 입원을 고민 중인데 자리가 날지도 확실치 않다. 아마 내일 다시 줄을 서야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7시 정각에 문이 열리자 부모들은 열을 맞춰 계단을 순식간에 오르더니 하나 둘씩 번호표를 뽑아갔다. 밤을 지새느라 예민해진 상황에서 줄을 헷갈려 앞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뒤로 가라”며 한껏 날을 세우기도 했다.

광산구의 한 아동병원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같은 날 오전 5시께 병원 안 접수 대기실에는 30여명의 부모들이 불도 켜지지 않은 깜깜한 공간에서 대기표를 뽑기위해 대기실 밖 계단까지 줄지어 서있었다. 5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숫자가 적인 대기표를 뽑아갔다. 단 3분만에 대기번호는 40번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두 자녀를 둔 이황(35)씨는 “오전 3시30분에 왔는데 10번을 뽑았다. 이 병원에 자주 왔는데 항상 이렇게 새벽에 대기했다. 아버지나 어머니께 부탁드린 적도 많다”며 “어제는 부모들 사이에서 싸움도 났다고 들었다. 한 사람이 번호표를 열댓 장씩 뽑아가거나 접수까지 대리로 하는 등 꼼수도 많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언제까지고 겪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꼭두새벽부터 아동병원이나 소아과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환절기 철이라 질병 감염이 높은 것도 있지만, 아동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의사들도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광주·전남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광주는 233명, 전남은 154명이다. 의료복지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인구(0~18세) 1000명당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광주는 0.96, 전남은 0.59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 2.18명으로 집계된 점에 비춰볼 때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에서는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4년간 광주·전남의 소아청소년과 의원 수도 감소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광주 2019년 47개소에서 지난해 41개소로, 전남은 27개소에서 26개소로 감소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다른 과목에 비해 턱없이 낮은 진료비와 저출산 추세로 떨어진 전망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주된 원인이다. 단순히 시설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소아청소년과 인력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의료진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김혜인 기자·박소영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