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수집가들…애중, 아끼고 사랑한 그림 이야기
국립광주박물관 고 허민수 기증 특별전
12월 10일까지 조선 후기 서화 선봬
허련 가문 진도 출신 한국은행 인사
미국인 며느리 게일 여사 기증 의사
석농화원 미공개 수록작 묵매도 눈길
12월 10일까지 조선 후기 서화 선봬
허련 가문 진도 출신 한국은행 인사
미국인 며느리 게일 여사 기증 의사
석농화원 미공개 수록작 묵매도 눈길
2023년 09월 20일(수) 16:44 |
![]() 김진규 작 묵매도가 12월 10일까지 진행되는 고 허민수 기증 특별전 ‘애중愛重, 아끼고 사랑한 그림 이야기’에서 최초 공개됐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
미국 버지니아주 평범한 가정집에 오래도록 걸려있었다는 이 그림은 매화나무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과 글씨가 한 화폭에 담긴 조선시대 사대부 문인 김진규의 작 ‘묵매도’다. 조선 후기의 컬렉터라 할 수 있는 서화 수장가 김광국의 서화첩 ‘석농화원’에 실린 수많은 작품 중 하나라고 기록으로만 전하던 그림이었다. 김광국은 이 그림에 ‘애중무홀’이라는 글을 남겼다. ‘소중히 아껴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의 컬렉션을 아끼는 수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랜시간 켜켜히 쌓였을 수집가들의 ‘애중’이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국립광주박물관이 오는 12월 10일까지 선보이는 고 허민수 기증 특별전 ‘애중愛重, 아끼고 사랑한 그림 이야기’에서 ‘묵매도’가 최초 공개됐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지난 3월 미국에서 소중한 조선 후기 미공개 서화 4건 12점을 기증받았다. 이 작품들은 미국인 게일 허(Gail Ellis Huh·85) 여사의 소장품으로, 시아버지 고 허민수(1897~1972) 선생이 아들 내외에게 준 선물이었다. 허민수 선생은 전남 진도 출신의 은행가이자 호남화단의 거장 소치 허련 가문의 후손이다. 며느리 게일 허 여사는 시아버지 허민수 선생의 고향인 진도와 가까운 박물관에 존경하는 시아버지 이름으로 작품을 기증했다. 이번 특별전은 게일 허 여사의 뜻깊은 기증을 기리기 위해 기획된 전시로, 고 허민수 기증 서화와 관련 작품 총 46건 83점을 모아 함께 선보인다.
기증 서화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당연 17세기 문인 서화가 죽천 김진규(1658~1716)의 ‘묵매도’다. 조선 중기 문기 넘치는 수묵 화조도의 양식을 따른 이 작품은 기증과정에서 조선 후기 최고 서화 수장가 석농 김광국이 수집한 그림을 모아놓은 서화첩 ‘석농화원’의 수록 작품임이 밝혀졌다. 기록으로만 전하던 ‘석농화원’의 수록 작품이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김진규의 ‘묵매도’ 기증을 계기로 현재 흩어져 전하는 ‘석농화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3년 세상에 알려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석농화원’ 필사본을 최초로 대중에 공개하고, 현재 50여 점이 전해지고 있는 ‘석농화원’ 수록 작품 중 총 15점의 서화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했다. 특히 조선 중기 서화가 창강 조속(1595~1668)의 ‘묵매도’를 비롯한 미공개 개인 소장 작품 4점 등이 포함돼 관심을 끈다.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게일 허 여사가 스토리텔러가 되어 관람의 흐름을 이끈다. 먼저 첫 번째 ‘소치 허련과 동초 허민수, 그리고 의재 허백련’에서는 소치 가문의 후손인 기증자 동초 허민수 선생과 집안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번 기증품에는 소치 허련의 작품 2점이 포함됐다. 이 작품들은 기증자의 가족사진에 등장할 정도로 추억을 함께 했고, 허민수 선생과 진도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척이자 오랜 벗이었던 의재 허백련(1891∼1977)의 깊은 인연도 엿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동파입극도의 발견’이다. 기증작 신명연(1808∼1886)의 ‘동파선생입극도’를 조명하는 주제이다. ‘동파입극도’란 중국 송대 문인 동파 소식(1037∼1101)이 귀양 시절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19세기 문인 박봉빈(1838~1904)이 1865년 동파제를 지내기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이 새로운 ‘동파선생입극도’의 등장으로 19세기 소동파 애호 풍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 번째 주제 ‘그림을 보는 탁월한 눈, 김광국의 석농화원’에서는 이번 기증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김진규의 ‘묵매도’와 ‘석농화원’ 속 작품 15점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다양한 화목을 수집했던 조선 후기 최고의 서화 수장가 석농 김광국의 탁월한 안목과 감각을 느껴볼 수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 ‘11,500km의 여정’에서는 2022년부터 2023년 3월까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한국 국립광주박물관까지 11,500km 기증과정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