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받은 침묵…광주가 갖는 기억의 책무
갤러리포도나무 기획전 ‘소리 없는 목소리’
26일까지 5·18기념재단 전시관
참여작가 김홍빈·심혜정·정기현
기획 유재현·오월어머니집 협력
소설 '소년이온다' 모티브 재창작
2023년 10월 12일(목) 16:36
5·18기념재단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리 없는 목소리’의 영상작품 ‘꽃 핀 쪽으로’ 한 장면. 포도나무갤러리 제공
피비린내 가득한 1980년 5월을 겪은 광주의 상처는 40년이 넘어도 아물지를 못한다. 오랫동안 침묵이 강요되고 공공연한 폄훼가 지속된 탓이다. 오래전 아들과 남편을 잃은 5·18 당사자들은 여전히 왜곡된 세계에서 진실규명을 갈망한다. 마치 꿈속의 외침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역설적인 광주의 상흔을 표현한 갤러리포도나무의 기획전시 ‘소리 없는 목소리’가 오는 26일까지 5·18기념재단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소리 없는 목소리’ 전시는 대표적인 오월 소설인 한강의 ‘소년이온다(창작과 비평·2014)’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획됐다. 실제 오월어머니 6명이 이번 기획에 참여했는데, 어머니들이 소설을 낭독하면 이를 촬영해 영상작품으로 만들었다. 어머니들은 끝나지 않는 5·18을 다시 한번 겪어내고 이를 매개로 작품을 제작한 작가를 비롯해 관람객들은 기억의 책무를 되새긴다.

심혜정 영화감독을 주축으로 김홍빈 작가와 정기현 작가가 작품을 제작했으며 전반적인 구성은 정현주 갤러리포도나무 관장과 독일에서 활동 중인 유재현 전시기획자가 맡았다. 소설 낭독은 5·18로 인해 아들과 남편을 떠나보낸 박순금(81), 윤삼례(80), 최은자(68), 김순심(85), 이정덕 (72), 장명희(63) 여사가 맡았다.

전시공간에는 세 개의 영상이 독립된 채널로 상영된다. 먼저 ‘꽃 핀 쪽으로’는 6명의 오월어머니와 현재를 살아가는 다중 화자들이 ‘소년이온다’ 제6장을 낭독하는 장면으로 채워졌다. 아이를 자기 손으로 묻은 동호 어머니의 독백을 따라 누군가의 목소리는 앞서 나가기도 하고, 뒤따라 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겹쳐지기도 한다. 5·18의 이야기는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이어진다. 마지막 순간에 소년은 꽃 핀 쪽으로 여러 목소리를 인도한다.

‘어린 새, 소년 2023’과 ‘제1장 어린 새’는 짝을 이루는 영상이다. ‘어린 새, 소년 2023’은 2023년의 현재로 소환된 동호의 시선을 소리 없이 따라가는 영상이다. ‘제1장 어린 새’는 소설 ‘소년이온다’의 제1장 텍스트를 담고 있다. 두 영상에서 과거와 현재, 이미지와 텍스트가 서로 교차하며 영향을 미치고, 우리에게 1980년의 광주를 소환하도록 이끈다.

전시장 입구에는 블루프린터의 설치작품 ‘소년이 온다’가 관객을 맞이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 벽면의 선반에 관객들이 소설 ‘소년이온다’의 제1장을 낭독하고 녹음할 수 있도록 책과 녹음기가 배치되어 있다. 제1장은 동호가 친구 정대를 잃은 상처를 드러내며 담담히 독백하는 내용이다. 관객들은 낭독에 참여하면서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교감한다. 작은 서가에는 터키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10여종의 ‘소년이온다’ 책들을 엿볼 수 있다.

유재현 기획자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온다’는 5·18의 기억이 훼손되지 않아야 할 것임을 짚어낸다. 특히 제6장은 자신의 아들을 직접 손으로 묻은 동호 엄마의 독백을 담고 있는데, 해당 서사는 이를 낭독하는 오월어머니들의 개인사와 고스란히 포개진다”며 “전시 타이틀 ‘소리 없는 목소리’는 국가의 의해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받은 이들이 사실과 진실을 규명하고자 갈망하는 꿈속의 외침(cry)이다. 이 역설적 표현은 아직도 그들의 무의식에 각인된 독백과 상처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5·18기념재단이 주최하고 오월어머니집, 갤러리포도나무, 독일Art5예술협회, 황금산아트플랫폼, 시민자유대학이 협력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