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매력에 풍덩…허백련 이후 현대 한국화 방향 제시
26일까지 남구 이강하미술관
기획전시 ‘시대의 이미지,…’
현대 한국화 중견작가 4명
권기수·유근택·성태훈·허진
가상실경 ‘선유도왈츠’ 눈길
2023년 12월 04일(월) 17:01
권기수 작 능수버들의 소리. 이강하미술관 제공
의재 허백련은 호남을 대표하는 한국화가다. 대가의 반열에 통하는 그는 1920년대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근대화 시기 서양화풍이 물밀듯 퍼지는 가운데서도 동양의 세계를 심화시키며 훗날 광주 화단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이강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 ‘시대의 이미지, 이미지의 시대’는 허백련 이후의 현대 한국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동시대 수묵화단을 견인하고 있는 중견작가 권기수, 유근택, 성태훈, 허진 등 4인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권기수 작가는 ‘총석(叢石)’ 시리즈와 드로잉, 유근택 작가는 ‘고향’ 시리즈, 성태훈 작가는 ‘선유도왈츠’, 허진 작가는 오랫동안 천착해온 ‘유목동물과 인간과 문명’·‘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시리즈를 선보인다. 동양적 풍경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기이하지만 다채로운 세계를 감상한다.

권기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기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성별이나 나이로 규정지어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기호인 동구리를 창조, ‘사회적 상호 작용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작업에 담아낸다. 웃는 얼굴의 캐릭터적인 요소를 통해 작가는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속 웃음이라는 사회적 가면을 쓴 현대인의 모습을 선명히 드러낸다. 또한 단순화된 형상의 캐릭터가 지닌 한계를 확장시키기 위해 작가는 강열한 색감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소재를 선택, 구성하며 화면 안에 담아낸다.

유근택 작 고향. 이강하미술관 제공
유근택은 전통적 동양화의 지필묵을 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일상을 담아내고 리얼리티를 기억하는 현대미술 작가이다. 그의 작업에 보이는 소재의 일상성과 설치 방식은 먹이 퍼지는 발묵 뿐만 아니라 과슈와 호분을 이용한 채색으로 차별화 된다. 그의 화면은 서구의 원근법과 동양의 사상, 개인의 경험이라는 삼단계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현대회화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평이하고 가벼운 ‘일상’이라는 주제는 역사성과 서사성으로 확대된다. 먹으로 온전히 기록된 일상이라는 모티브를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일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를 기록하기 위한 방법으로 ‘리얼리티’를 사용함으로써 그 깊이가 더해간다.

성태훈은 전남 곡성 출생으로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및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 수료했다. 성태훈 작가는 전통 한국화에서 출발하여 수묵화, 채색화, 옻칠화 등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했다. 특히 이번 출품 작품 ‘선유도 왈츠(2022)’ 연작은 아크릴로 그렸지만, 동양화의 준법과 채색법 등이 두드러지는 대작이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 6년여의 시간이 걸렸으며 재료나 소재, 주제 면에서 도약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작가는 사람의 희노애락이 가득한 삶의 여정을 왈츠로 표현했으며, 우리나라의 굵직한 현대사를 전투헬기와 장갑차로 표현했다. 이외에도 신작 ‘무지개가 매화에 피다’ 시리즈와 대표작 ‘날아라 닭’, ‘길을 묻는다’ 등이 있다.

허진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했다. 그는 조선말기 추사 김정희 수제자이자 호남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 허련의 고조손이며 근대 남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의 장손이다. 특히 200년간 5대에 걸쳐 호남 남종화의 원류, 운림산방의 맥을 잇고 있다. 자연생태계 그대로의 역동적 유목동물과 동학이미지를 병치(倂置)시킴으로써 환원과 기억의 동시성(同時性)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이종융합동물 연작 또한 지속가능한 생태사회를 지행하고자 했다. 34회 개인전 및 60여회의 단체전시를 참여했고 현재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