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시방 우리의 꽹과리를 도둑질한 자는 누구인가?
389)도둑맞은 꽹과리 찾기
“이번 총선은 리더로서의 품격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연주해야 할 꽹과리마저 내팽개쳐버린 도둑을 징치하는 놀이판 아닌가? ”
2024년 04월 04일(목) 13:56
영광우도농악 연행장면-이윤선 촬영
영광우도농악 잡색놀이 장면-이윤선 촬영
일군의 농악대들이 재미나게 놀다가 갑자기 중지한다. “앗, 꽹과리가 없어졌다!” 상쇠의 꽹과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모두 수군거리며 꽹과리 찾기에 돌입한다. 꽹과리를 훔친 것은 필경 도둑의 소행일 것이다. 재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일련의 연극놀이들이 진행된다. 상쇠가 말한다. “수상한 놈이 다니더니 꽹과리 한 짝이 없어졌다!” 상쇠가 갑자기 잡색 중의 대표격인 대포수의 멱살을 잡고 말한다. “이놈이 수상한 놈이다!” 대포수를 비롯해 여러 잡색들의 재담이 이어진다. 며칠 전 일이다. 영광읍 옛터에 새로 전수관을 리모델링한 우도농악전수관에서 연행한 이수자심사 공연의 한 장면을 묘사해봤다. 이 놀이를 일명 ‘도둑잽이굿’이라 한다. 꽹과리를 도둑맞았다가 다시 찾는 과정을 익살과 능청, 갖은 재담으로 풀어낸 연극놀이다. 영광우도농악처럼 여러 잡색이 탈을 쓰고 나와서 연행하기 때문에 탈놀이의 한 범주라고 해도 무방하다. 잡색이란 함은 꽹과리와 북, 징, 장고, 소고 등을 연주하는 농악대들 외에 갖가지 모양의 탈이나 벙거지, 우스꽝스러운 복색을 하고 대열의 뒤를 따르거나 때때로 연극 행위를 하는 이들을 총칭해 부르는 이름이다. 잡색(雜色)의 말뜻이 ‘여러 가지가 뒤섞인 색’ 혹은 ‘온갖 사람이 마구 뒤섞인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층과 계급 군상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전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농악이 있다. 그중 호남의 농악을 좌도와 우도로 나누고 그 특징을 주장한다. 경기농악, 영남농악 등 단일한 호명으로 불리는 것과 사뭇 다르다. 그만큼 농악이 발달한 지역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도둑잽이굿은 우도농악을 중심으로 연행되는 연극놀이다. 나는 좌도와 우도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서울에서 호남으로 내려오는 기찻길을 예로 들곤 한다. 대전에서 익산, 전주, 남원, 곡성, 구례, 순천, 여수엑스포역으로 가는 전라선 철도가 좌도다. 서대전에서 논산, 익산, 김제, 정읍, 장성, 광주, 나주, 목포에 이르는 호남선 철도가 우도다. 본래는 왕이 남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왕의 오른쪽을 우도, 왼쪽을 좌도로 이르던 데서 비롯된 개념이다. 판소리로 말하면 우도는 서편제가 중흥한 지역이다. 좌도는 동편제가 중흥한 지역이다. 우도농악과 좌도농악의 구분이나 경계가 그리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판소리의 서편제와 동편제를 나누는 방식과 흡사하기 때문에 차차 논의를 펼쳐나가기로 한다.



영광우도농악 잡색놀이의 행간



‘도둑잡이놀이’는 박혜영이 정리한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사전 항목을 참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설명에 의하면 호남농악에서 상쇠와 앞치배, 기수들과 대포수, 잡색 무리들이 아군과 적군으로 편을 갈라 펼치는 놀이다. 도둑잡이에 앞서 펼치는 놀이를 일광놀이라고 한다. 상쇠와 쇠잽이들이 춤을 추며 진풀이를 하다가 꽹과리를 잃어버리고 대포수와 재담을 이어가는 연행이다. 김제농악, 정읍농악, 부안농악, 고창농악, 영광농악, 광산농악, 이리농악, 진안중평농악 등 호남농악 대부분이 연행하는 놀이다. 한국농악의 바이블이라고도 하는 정병호의 『농악』에 김제농악을 중심으로 이 장면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영광우도농악의 경우 탈을 쓰고 나오는 잡색들이 10명이다. 대포수는 장총을 들고 등장하는 일종의 지휘관 캐릭터다. 연극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적군의 장수로 설정된다. 이외 양반탈을 쓰고 나오는 양반, 빨깐색 천을 가랑이에 끼운 할미, 코가 왼쪽으로 비틀어진 좌창부, 오른쪽으로 비틀어진 우창부, 조리승(불갑사 도사), 오늘날로 치면 하급공무원으로 잘난 체 하는 참봉, 조리승과 각시 사이를 방해하는 비리쇠(방울쇠, 말뚝쇠, 쇠뚝이), 조리승과 놀아나는 각시 등이 있고, 탈을 쓰지 않은 크내기(아가씨) 등이 등장한다. 인물치레 과정 등 익살과 능청스런 재담을 거쳐 결국 꽹과리를 찾게 된다. 박혜영의 “광산농악의 성립에 따른 잡색놀이의 전승과 혼종화 과정”(남도민속연구 31집)에 의하면, 영광우도농악을 비롯한 호남농악의 잡색놀이가 일련의 이입 과정을 거치면서 혼종화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허용호는 ‘축제적 감성의 발현 양상과 사회적 작용-영광농악 잡색놀이를 중심으로-(호남문화연구 49)’에서 ‘전경환 제공본’, ‘박용재 채록본’, ‘보존회본’ 등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영광우도농악의 잡색놀이는 영광 혹은 영무장(영광, 고창, 장성) 지역에서 무계 중심으로 연희활동을 하던 신청(神廳)집단들이 유지해오던 탈(가면)을 승계하거나 새로 제작하고, 여러 지역의 탈놀이와 연극 등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연극놀이다. 물론 독립 장르가 아니라 우도농악 한 과장으로서 연행된다. 주목할 것은 도둑잡이 혹은 도둑잡기 놀이의 전국적 규모다. 영광뿐만 아니라 우도농악 전반, 나아가 경남지역의 무속연행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이들 놀이로 전승되는 ‘도둑잡기’는 종이쪽지에 ‘도둑’, ‘포도대장’, ‘포교’, ‘백성’, ‘학자’ 따위의 이름을 적어 한 장씩 뽑은 다음에 ‘포도대장’이 된 아이가 ‘도둑’이 된 아이를 잡는 놀이다. 충남 아산이나 전남 진도지역에는 도둑맞은 물건을 찾기 위해 행하는 ‘도둑잡이 뱅이’ 주술이 전해온다. ‘뱅이’는 경남지역에서는 ‘이방’ 제주도에서는 ‘방쉬’라고도 한다. 이름이나 연행방식, 의례나 놀이의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떤 중요한 사건이나 사고, 사물이나 사람을 도둑맞고 결국 그것을 찾아내어 훔친 자를 징치한다는 메커니즘은 서로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농악의 도둑잡이 놀이는 우리의 소중한 어떤 것, 어떤 인물, 잃어버린 어떤 마음들을 재현하고 회복하는 놀이이자 의례인 것이다.



남도인문학팁

잃어버린 우두머리, 우리들의 꽹과리 찾기



꽹과리를 흔히 ‘쇠’라고 한다. 이를 도둑맞았다는 설정이 의미심장하다. 꽹과리를 연주하는 이를 ‘상쇠’라고 하는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상쇠는 뜬쇠, 수꽹과리, 상공운님, 상쇠재비라고도 한다. 농악이나 두레패에서 전체를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농악을 하나의 마을이라고 한다면 마을의 이장격이요, 농악을 하나의 나라라고 한다면 대통령격에 해당된다. 일반인들이 흔히 접하는 사물놀이의 꽹과리 연주자가 전체 음악을 리드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꽹과리 연주를 주된 선율이라고 하면 장구와 북, 징이 연주하는 음은 배경음 혹은 조화음에 해당한다. 물론 농악이라는 음악 자체가 조화와 균형 특히 접화(接化)의 세계를 지향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그 역할을 상고할 뿐이다. 왜 우리는 이런 놀이 혹은 의례를 만들어 연행해왔을까? 영광우도농악 잡색들의 면면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자식 자랑, 권력 자랑, 간음과 방탕, 거짓말과 속임수, 훔치고 뜯어 고치고 강제로라도 이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이기심 따위가 우스꽝스럽게 제작된 탈과 복색과 몸짓과 그들이 내뱉는 말들에 해학적으로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어 연행하는 까닭은 이 부조리와 모순을 적군으로 설정한다는 뜻이다. 그래서다. 시방 우리의 꽹과리를 도둑질한 자는 누구인가? 마침 총선이 임박했다. 이번 총선은 리더로서의 품격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연주해야 할 꽹과리마저 내팽개쳐버린 도둑을 징치하는 놀이판 아닌가? 요한 하위징하가 말했듯 호모루덴스 곧 인간의 본성이 놀이라는 점에서, 유쾌하고도 명료하게 총선이라는 놀이를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어처구니없이 도둑맞은 꽹과리를 찾는 놀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