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손필영> 21세기에도 <세일즈맨의 죽음>이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2024년 07월 16일(화) 18:03 |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총파업에 돌입한 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가치의 변화와 가족의 문제를 잘 풀어내 시대와 관계없이 언제나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대학 때 윌리 로만의 대사를 읽으시던 교수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던 일도 기억난다. 60세를 넘긴 주인공 윌리 로먼은 평생 먼 거리를 운전하면서 물건을 파는 일을 해 온 가장이다.
윌리: 피곤해 죽을 지경이야. (플루트 소리가 잦아들었다. 윌리는 린다 옆 침대에 앉는다. 좀 멍하니) 할 수가 없어.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여보./...윌리: (잠시 뒤) 갑자기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어. 차가 자꾸 길가로 빠지는 거 있지?
극은 정신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고 체력도 바닥난 윌리(주인공)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아내는 태어나 이름 지을 때부터 알아 왔던 사장님(전 사장님의 아들)을 만나 내근직을 부탁해보라고 말한다. 그는 온 인생을 다 바쳐 한 회사에서 영업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여유 없는 생활만 남았다.
윌리:... 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고장 나기 전에 내 것으로 가져 봤으면 좋겠네! 만날 고물만 내 차지야! 막 자동차 할부가 끝나니 폐차 직전이지. .../린다:...여보. 하지만 이번만 내면 주택 융자 할부도 끝이에요. 이것만 내고 나면 여보, 이 집이 이제 우리 것이 되는 거예요./윌리: 이십오 년이야!
현대는 할부와 융자의 시대이다. 할부로 물건을 사고 25년, 30년 융자를 얻어 집을 산다. 할부가 끝날 때쯤 되면 물건은 고장 나서 쓸 수 없게 된다. 아마 융자가 끝나면 윌리 로만처럼 사회생활도 끝이 날 것이다. 내근직을 부탁하자 그는 순식간에 해고당해 졸지에 생활을 영위할 방법을 잃었다. 평생을 바쳤든 성실했든 그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윌리: 보스턴에 가겠습니다./하워드: 로먼 씨, 더 이상 보스턴에 안 가도 됩니다. /윌리: 아니, 왜요? /하워드: 더 이상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랫동안 이 말을 하려고 별러 왔어요. / 윌리: 사장님, 지금 저를 해고하는 겁니까?/하워드: 로먼씨에게는 길고 오랜 휴가가 필요할 것 같아요.
- <세일즈맨의 죽음(민음사, 김유나 옮김)> 중에서
이 드라마의 깊은 의미는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길 바라며 1949년 작품이지만 소개하는 이유는 소모품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저 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상황은 20세기보다 더욱 극단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물질을 중심으로 엮이는 인간의 삶의 조건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