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박재항>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박재항 서경대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
2025년 05월 13일(화) 17:04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재판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추천불패’.

취업이나 진학을 위한 추천서를 꽤 많이 써줬다. 내가 추천서를 써준 친구는 입학이나 입사에 실패한 적이 없다며, 한동안 중국 무협영화 제목과 같은 표현을 쓰며 농담을 하곤 했다. 추천서가 얼만큼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평판이 제법 괜찮은 곳들에 추천서를 써준 친구들이 들어가는 데 성공하며, 노하우라기 보다는 꼼수에 가까운 비결(?)도 털어놓았다. 추천이 없어도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친구들에게만 추천서를 썼다. 추천서를 제출할 곳들이 대개 어느 정도 알 수 있거나 인연을 가진 학교나 기업들이어서 지원하는 친구들의 합격 확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추천서 부탁을 외국인 친구에게 받았다.

한국으로의 귀화를 위한 추천서였다. 부탁한 친구는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의 여성이다. 모국에서 대학을 마친 후에 2015년에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바로 IT관련 한국 회사에 취업을 했다. 팬더믹 전해에 그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필자가 강의했던 마케팅 25강의 학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매년 두어 차례 정도 만나며, 이직 등 그의 진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IT 분야의 정보와 분위기를 나는 전해 들었다. 그 친구는 취미 겸 부업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 열심히 출연을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어서 야외 활동이 제한되는 와중에 한류 열풍을 타고 그가 출연한 한국 드라마 한 편이 동남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의 모국에서 화제가 되며 SNS 팔로워가 급증했다. 계속 본업은 회사원이었지만, 외국인 연기자 인플루언서로 한국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광고모델과 홍보대사 등으로 이후 다방면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유명인사에게까지 추천서가 필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친구 말이 한국 귀화 과정과 합격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지난한 절차를 거쳐서 획득하는 것이니, 귀화가 결정되면 파티를 하기로 했다. 한국의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외국인 여성이 귀화 면접에 합격했다는 기사를 보고, 2개월 전에 귀화를 위한 추천서를 써준 친구가 생각났다. 결과가 나왔을 것 같아서 연락을 했더니,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접수 후 심사해서 확정되는 데 19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믿기지 않아서 법무부 해당 부처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하니 정말 그랬다. 친구에게 이렇게 한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건 기록만 6만 쪽이 넘는 대법원 전원합의 재판도 9일 만에 끝내는 나라에서, 귀화 심사에 19개월이 걸린다는 게 말이 돼?’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 한국 본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 나라에서 최고 평판의 대학교 학부 출신이었다. ‘해외 우수 인재’라고 분류하며, 그들을 한국의 본사로 데려오기 위해 회사는 연봉 이상의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한국 생활도 만족스럽다고 하던 그 외국인 친구들이 외국인 등록 관련해서 소관부처에 다녀오면 속된 말로 ‘한국에 만정이 떨어진다’고 했다. ‘빨리빨리’의 한국 사회에서 느려 터지는 처리시간에, 담당자들의 불친절과 무시하는 태도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꽤 큰 회사의 최고경영자급 외국인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나름 이유들을 추론했다.

먼저 고위 공직자를 필두로 힘 있는 한국인들이 한국에 거주하며 일하는 외국인에 대해서 별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부딪힐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관료적 권위주의와 전통적 장유유서로 상급자와의 소통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행정 처리를 하는 데서 겪는 고충이 제대로 전해지지도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 것 같다고 한다. 외국인 관련 이외의 행정업무를 하는 데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며 한 마디로 정리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직들은 관공서에서 스스로 줄을 서고 일을 처리하지 않잖아요.”

정면으로 반박하기 힘들었다. 외국인들이 겪는 어려움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장면만 찾아서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앞서 귀화추천서를 써준 친구 이상으로 한국의 공중파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한국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인기를 얻은 외국인들이 많다. 그들만 보면서 모든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그들이 겪는 고통에는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 목 앞쪽 중간에 목뿔뼈라는 부분이 있다. 목을 졸라 살해 당한 시신은 목뿔뼈가 부러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질식사로 밝혀진 경우 목뿔뼈가 살인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추리소설에도 가끔 등장한다. 1827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해부학자 로버트 녹스는 질식사한 시신 하나를 샀다. 살해 당한 시신이면 사서는 안되고,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녹스는 목뿔뼈가 온전하다며 돈을 주고 시신을 구입했다. 실제는 시신을 가지고 온 두 명이 가슴을 눌러 살해했다. 녹스는 무언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겠지만, 목뿔뼈만 확인하고는 시신을 계속 구입했다. 살인의 증거를 찾지 않으려 한 것이다. 목뿔뼈가 온전하기에 살인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합리화했다.

19세기 영국 에딘버러에서의 살인과 시신 판매 사건은 꽤나 화제가 되어 추리소설의 소재도 되고, 괴기스런 이야기로 잡지에서도 가끔 봤었다. 해부학자 녹스가 목뿔뼈만 확인했던 건 ‘과학잔혹사’란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시신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에 살인사건이 아닌 증거만 찾는 녹스를 보면서,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생각났다. 난봉꾼 생활로 얻은 매독으로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 M의 아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다. 분명히 아내의 불륜의 소산인데, M은 아기가 자신의 핏줄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빼닮았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 양말을 벗어 아기의 발가락이 자기와 똑같다고 강변한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려고 하는데, M에게는 그게 아기 신체의 여러 군데에서도 발가락이었던 것이다. 그 일부분으로 혹시나 자신에게 불리한 게 나올 것 싶으면, 무시하려는 경향도 있다.

당선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재판 관련 6만쪽의 기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짚어내는 이들에게 한국 전체가 겪을 혼란과 고난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차라리 그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수준이면 좋겠다. 그렇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그게 전부이고, 정말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확신범처럼 생각하는 게 더욱 무섭다. 19세기 영국의 녹스도 시신을 불법으로 구입하면서 목뿔뼈만 확인하고는, 자신은 해부학을 위하여 온몸을 바치고 있다고 자부했다. 아내를 때리던 폭력남편 M도 아기와 자신의 발가락이 닮았다고 강변하며 자애로운 아버지로서 자신을 그렸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애국자로 자처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크게 울리고 있는 것 같다. 20일 후의 대선이 그런 목소리를 잠재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