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주웅>국제통상 변화 흐름, 지켜야 할 농민의 삶
김주웅 전남도의원
2025년 05월 15일(목) 1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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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그동안 농업 보호를 위해 다양한 장치를 유지해왔다. 한미 FTA 당시에도 이들은 주요 협상 쟁점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상호관세 부과를 통해 ‘상호주의’를 주장하며 이 같은 비관세 조치들을 관세율 산정에 포함시켰고, 한국은 FTA 체결국 중 가장 높은 25%의 상호관세율을 통보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쌀에 최대 513% 관세를 부과한다”며 무역 불균형의 근거로 한국 농업을 직접 언급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는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검역 기간, 쇠고기와 가공품, 사료 원자재, 원예작물 등에 대한 제약 문제가 명시돼 있다. 이는 향후 FTA 재협상 국면에서 농업시장 개방과 비관세 장벽 철폐 요구가 정면으로 제기될 수 있다는 신호다.
FTA의 근간이 흔들리는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통상 현안이 아니다. 자유무역 체제에서 이익을 누리던 국가들조차 보호무역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는 농업 개방을 유보해왔던 한국에 더 구조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상호관세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쌀·쇠고기·과일류의 고율 관세 체계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제도와 법안들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FTA 대부분에 ‘최혜국대우’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번 사안을 미국과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이러한 통상 환경의 변화는 농업 정책에 구조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정부와 지자체 등 농정 유관 기관은 대부분 ‘농업 보호’에 초점을 맞춰왔다. 더불어 국제 협상에서는 ‘농업의 특수성’을 앞세워 개방을 유예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 전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개방 자체를 막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농업’이 아니라 ‘농업인’을 지켜야 한다. 농업을 주제로 한 FTA 조항이 재편되는 국면에서 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따라서 시급한 과제는 농업인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내 생계 주체로 재정의하는 정책 전환이다. 농업인의 충격은 단순한 수익 감소가 아니라 생계 기반의 붕괴다. 이에 따라 일정 기간 이상 농업에 종사한 이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지급을 검토하고, 재취업·전직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농촌 특화형으로 설계해 지역 내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계 유지와 지역사회 기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고용보장 전략, 전환기 창업 자금 등 금융 지원,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 마련이야말로 새로운 농정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
특히 전라남도와 같은 농업 중심 지역은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FTA 재협상’이라는 외부 변수에 대응하는 지방정부의 전략은 개방 자체를 막기보다 충격을 완충하고 회복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농업의 ‘시장 경쟁력’이 아니라 ‘시대 흐름 속 농업인’이라는 시각을 정책 설계에 도입해야 하며, 이는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국제 무역 변화 속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발표는 ‘미국 농업을 지켜야 한다’며 한국 농업에 경고를 보냈다. 한국 또한 더 이상 ‘우리 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구조다. 이제는 누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FTA 재협상으로 농업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경우, 보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환의 설계를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한다. 농업이라는 산업이 흔들릴 때, 그 안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농정의 시작이자, 통상 환경 격변기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정치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