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오월, 우리를 지킨 영웅들
이정준 취재2부 기자
2025년 05월 19일(월) 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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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광주의 5월에는 언제나 웃음 뒤에 슬픔의 그림자가 뒤따른다. 1980년, 각자의 위치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수많은 시민은 국가의 잔혹스러운 탄압으로 인해 안타깝게 희생됐다.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던 시장 상인, 총칼을 들고 용감히 맞서던 소년들, 영문도 모른 채 쓰러져 간 어린아이 모두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날 쓰러진 오월의 영령들은 오랜 시간 외롭게 잠들어 있었다.
44년의 시간이 흘러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동원된 계엄군들은 헬기를 타고 국회에 진입했고, 시민들은 그 모습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날 밤, 잔혹하고 두려웠던 광주의 5월이 다시 펼쳐지는 듯했다. 시민들은 공포심을 뒤로 한 채 국회로 뛰쳐 나와 무장한 군인들을 에워쌌고, 대통령의 무모한 판단은 ‘6시간 천하’로 끝이 났다.
아침을 맞은 시민들은 “1980년의 광주가 현재를 구했다”며 입을 모았다. 그날의 항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국회로 모인 5000여 명의 시민과 매주 주말 전국의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이 그 증거다. 오월의 영령들은 생사와 시대를 넘어선 연대로 오늘날의 우리를 지켜냈다.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전임교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협받았던 그날, 5·18의 기억 덕분에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5·18의 아픔을 떠올리며 깊이 공감했고, 오월 영령의 정신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5·18 제45주년을 맞아 취재하며 만난 유족과 시민들도 “지난 연말 다시 국가에 큰 비극이 닥칠 뻔 했다”고 입을 모았다.
혹자는 “이제 5·18은 그만 언급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이미 끝난 일 아니냐”고 말하며 80년 오월을 폄훼하기도 한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와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5·18민주화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계엄군의 총칼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눈물은 평생이 지나도 마르지 않을 것이며, 오월의 영령들은 민주주의에 위협이 닥치면, 언제든 부활할 것이다.
오월의 영령들은 우리를 지켜냈고, 5·18의 희생과 정신은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나아갈 길을 비추는 거울이 됐다.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담기기를 기원한다.
이정준 취재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