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5주년>민주주의를 묻다, 세대가 답하다
●51년생 윤다현씨·97년생 장지웅씨
80년 도청·2024년 광장서 민주주의 체험
“새 방식으로 연대…갈등·혐오 넘어서”
“세상 바꾸는 투표…권리 외면해선 안돼”
“희생으로 물려준 민주주의 지켜낼 것”
2025년 05월 20일(화) 18:09
장지웅씨.
윤다현씨.
1980년 5월, 국가폭력에 맞서 목숨을 걸었던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삶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45년이 흐른 지금, 2025년의 광주에는 또 다른 세대가 자라고 있다. 투표로, SNS로, 광장에 나가 응원봉을 흔들며 각자의 목소리를 높인 Z세대가 그 주인공이다.

한 세대는 계엄군의 총칼 앞에서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외쳤고, 또 한 세대는 불평등과 차별 속에서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두 세대는 동일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이에 본보는 광주·전남의 5·18 세대인 윤다현(74)씨와 Z세대인 장지웅(27)씨가 바라보는 ‘민주주의’를 통해 세대 간 단절을 넘어 공감과 연대를 모색하고자 한다. 기억하는 자와 질문하는 자, 그들이 나눈 말 속에서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얼굴을 다시 묻는다.



-각자 경험했던 민주주의 체험을 시작으로 대화 부탁드린다.

윤> 시민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광장에 나섰던 그 경험이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1980년 5월, 도청 앞에서 나눠먹던 주먹밥, 적막한 밤에 시민들이 교대로 경계를 서며 서로를 지켰던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가 모여 서로 도왔고, 눈빛만 봐도 통했다. 각자만의 ‘책임’을 느껴서 한 행동들을 보며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처음 몸으로 느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부상자를 돌보며, 함께 방어선을 구축했던 그 열흘은 평생 간직할 민주주의의 현장이었고, 어떤 제도보다 강력했던 민주주의 그 자체를 온 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장>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민주주의를 ‘개념’으로 접하고, 거리의 시민들을 통해 민주주의를 ‘체험’으로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시위나 집회를 통해 민주적 효용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꼈다고 생각한다. 2008년 광우병 시위,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2025년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집회 등이 그것이다. 특히 지난 2016년 촛불집회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경험을 통해 가장 큰 민주주의적 체험을 경험했으나, 이번 윤 정부의 경우 정권과 국가기관의 사고방식이 시민들의 상식을 많이 벗어나지 않았나. 지금으로서는 국민들이 지켜왔으나 그들이 훼손한 민주주의의 회복은 아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그 시절을 경험한 이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윤> 민주주의는 ‘모두의 존엄이 같은 사회’라고 믿는다.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누가 더 돈이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억누를 수 없는 사회, 그게 민주주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법보다 먼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계엄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직도 치가 떨린다. 우리 세대에게 ‘계엄’이란 곧 총칼이고, 죽음이고, 국가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그 고통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인데,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줄 알았던 이 나라에서 다시 계엄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5·18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트라우마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고통을 무시한 채 또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정권을 지키려 한 시도는 국민을 다시 거리로 내모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말로만 지켜지는 게 아니다. 시민이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권력을 견제해야 지켜지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싸워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게 아니라, 매일 같이 지켜내야 하는 살아 있는 체계라고 생각한다.



장> 비슷한 의견이다. 그러나 가장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다양성의 공존’이다. 이념과 보편성이 중심이었던 20세기를 지나, 이제는 다원주의가 중심이 되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다양성의 공존보다는 오히려 갈등과 혐오의 사회로 역행하고 있다. 기존 세대 간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세분화돼 젠더, 지역, 종교, 이념 등의 갈등과 결합해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반공 이데올로기, 극우 개신교적 성향, 지역 갈등, 젠더 갈등이 기묘하게 결합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연대하며, 갈등과 혐오를 넘어서는 힘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당시 5·18 시민군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어떻게 시위에 참여하게 됐는지 여쭤보고 싶다.



윤> 그날은 정말 우연히 광주에 와 있었다. 해남에 계신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가, 어릴 적 살았던 태봉마을(광주 동구)에 가서 친구를 만나 시내로 나갔는데, 거리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공수부대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때리고,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군대를 막 제대한 참이라 군인이 시민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위에서 명령했다고 해도,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시민을 그렇게 짓밟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 시위 현장에서 죽마고우 친구가 공수부대의 대검에 찔려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분노로 머리가 하얘졌다.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방위군을 꾸려서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그때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도 잘 몰랐다. 그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거리로 나선 것이고, 그렇게 나선 사람들 수만 명이 있었다. 지금의 청년들도 이런 마음으로 거리에 나서지 않았나.



정>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세월호 사건을 겪은 세대다. 본가는 목포로, 목포시는 세월호 사고 현장이었던 진도군과 가장 가까운 도시였다. 때문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사건 당일 교실에서, 하루 종일 팽목항에서 오는 앰뷸런스 소리로 분주했던, 슬픔에 잠겼던 목포의 시간을 기억한다. 동갑이었던 단원고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랐으나 구조되지 못한 채 바다에서 죽은 이후, 처음으로 정치·사회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자, 가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관련 문제를 접하다 보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도 생긴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옳은 것에 대해 양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양심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어 말이라도, 행동이라도 하기 위해 시위나 집회에도 참여하게 된 것 같다. 이와 관련해, 민주주의가 삶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윤> 사실 5·18 이전까지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솔직히 낯설었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 내 삶과 직접 맞닿아 있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5·18을 직접 겪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서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서로를 지켜내던 그 모습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섰고, 함께 목소리를 냈다. 그때 처음 ‘민주주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정치 뉴스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게 됐다. 투표도 빠짐없이 했고,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늘 관심을 가졌다.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 수많은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걸 아니까. 그게 5·18이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이다. 청년들은 어떤가.



장> 지금 저번 20대 대선의 결과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이 결정됐고, 그 선택이 이렇게 단기간에 국가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정치학도로서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선진적 국가 시스템을 신뢰하고 살아왔으나, 이번 불법 비상계엄과 이로 인한 여파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그것이 얼마나 게으른 오만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이 내란 피의자가 남겨준 유일한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투표가 민주주의의 꽃이고,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다. 살면서 많이 들어왔던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최근 3년 간 제대로 알게 됐다. 3년 전의 과오를 회복할 21대 대선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다.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우리에게 주어진 ‘투표’라는 민주적 권리를 외면한다면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번 대선에 임하려 한다.



윤> 맞다. 최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치적인 상황을 보며 참담함을 느꼈지만, 그 가운데서도 온라인으로, 광장에서, SNS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을 보며 희망도 봤다. 싸우는 방식은 달라도, 그 정신은 같더라. 우리 세대는 거리에서, 총칼 앞에서 싸웠다면 지금 청년들은 일상에서 불의와 싸우고 있다. 조직화된 정당이나 노동조합에 소속되지 않아도, 문제를 직시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고맙다.



장> 마지막으로, 5·18 세대에게, 마지막 날 도청에 남았던 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대신 전달하고 싶다. 끝내 지켜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남은 그날 이후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싶었는지, 어떤 삶을 꿈꿨는지 묻고 싶다.



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를 누리는 평범한 삶이지 않았을까. 비록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일이지만,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줌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의 희생을 이어 우리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희생으로 물려준 민주주의가 이 세대에 의해 살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난 45년의 고통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지현·정상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