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삶·노동 넘나들며 생명의 마지막 장면을 성찰하다
[신간]죽은 다음
희정│한겨레출판사│2만2000원
2025년 05월 22일(목) 09:26
죽은 다음
서울의 한 장례식장. 연합뉴스
국내에서는 해마다 많은 이들이 자살, 고독사, 산업재해, 참사 등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는 1만4439명으로 하루 평균 39.5명으로 나타났고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독사 사망자 또한 최근 5년간 연평균 8.8%로 증가했다. 죽음이 넘쳐나는 시대에 장례 노동자가 된 르포 작가가 삶에 대한 급진적 질문을 건넨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펴내는 기록노동자 희정 작가는 이번 신간을 통해 현실 속에서 죽음을 둘러싼 노동, 제도, 문화, 정동을 조망한다.

장례지도사, 수의 제작자, 시신 복원사 등 직접 장례 현장에 몸을 담갔던 저자는, ‘좋은 죽음’이 개인의 준비나 운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와 문화, 법적 조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죽음마저 ‘외주화’된 시대, 장례 역시 산업화되고 상품화되면서 ‘애도’는 빠르게 소비되는 행위가 됐다고 그는 지적한다.

특히 의료화와 도시화가 만들어낸 현대 장례 풍경은 30여년 만에 급변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집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이제는 75% 이상이 병원에서 죽고 병원 지하의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고인은 상조회사에 맡겨지고, 유족은 3일 만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애도의 시간은 너무 짧고, 장례는 너무 빠르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법적 가족 중심의 장례 제도는 1인 가구, 비혼자, 무연고자에게 장례 자체를 어렵게 만들며 현행 장사법과 의료법, 상속법은 모두 ‘정상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만 장례와 사후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무연고 사망자와 장례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장례 현장에서는 홀로 죽는 이들을 수습하는 장례 노동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장례업은 대표적인 비정규직, 저임금, 여성 중심 노동의 현장이다. 저자는 장례 실습생으로서 염습을 돕고, 빈소에서 음식을 나르며 장례 노동자들을 만난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시취이고, 시취보다 더 무서운 건 일자리라는 이들의 말은 죽음을 둘러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의 수고가 ‘누구의 노동’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장례가 여전히 터부시되고, 애도의 노동이 여성성과 결부된 ‘가정의 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편견 속에서도, 그들은 시신을 복원하고 고인의 입술에 립밤을 바르며 유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동을 묵묵히 수행한다.

책은 또한 국가가 참사를 ‘사고’로 고치고, 유족에게는 ‘슬픔을 정치화하지 말라’고 요구할 때,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전태일, 용산참사 철거민, 김용균 노동자 등 ‘공적 애도’가 필요한 죽음을 조명하며, 장례가 단순히 고인을 떠나보내는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를 묻는 행위임을 말한다.

독자들은 책을 정독하며 죽음이 상품이 된 시대 속에서 존엄한 죽음, 나답게 기억되는 죽음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탐색하게 된다. 생전 장례식, 무연고자 공영장례, 장례협동조합 같은 국내의 실천 사례는 물론, 죽은 이를 축제로 기리는 멕시코, 시신과 함께 몇 년을 살아가는 인도네시아 토라자의 장례 문화까지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념을 사회, 시대마다 달라지는 애도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죽음이라는 끝에서 삶을 다시 묻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고인을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이의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남은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질문하자는 뜻이다.

죽음은 삶의 거울이고, 애도는 살아 있는 자들이 공동체를 상상하는 방식이다. 무겁지만 따뜻하게, 실용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독자에게 삶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볼 기회를 건넨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