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작품에 깃든 생명 향한 경애…다큐 '자연의 영혼'
지브리 설립 40주년 기념작
미야자키 작품 속 자연관 탐구
미야자키 작품 속 자연관 탐구
2025년 05월 22일(목) 10:23 |
![]()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의 오스카 수상이었지만, 미야자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미야자키는 이후 인터뷰에서 “이라크를 폭격하는 나라에 가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11년이 흐른 뒤 아카데미 공로상 트로피를 거머쥔 그는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이와 연필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시대를 살 수 있었다는 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영화를 만든 지난 50년간 우리나라가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정치적 발언을 좀처럼 하지 않고 태평양 전쟁 당시 투입된 전투기 ‘제로센’을 영화에 등장시켜 종종 극우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곤 한다. 그러나 그는 전쟁과 파괴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다. 그의 작품을 몇 편만이라도 본다면 이를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레오 파비에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인간과 자연, 나아가 생명을 향한 경애가 담긴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영화다.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40주년을 맞아 제작된 작품으로, 미야자키의 데뷔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부터 최근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까지를 살펴본다.
미야자키의 과거 인터뷰와 에세이 속 문구를 삽입해 그의 세계관과 영화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작품에 녹아들었는지를 보여준다. 미야자키와 오랜 세월을 함께 일한 동료, 그의 작품을 연구한 학자 등 전문가들의 인터뷰도 담겼다.
미야자키는 유독 물질로 덮인 세상을 살아가는 미래 인류를 그린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에서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선 인간의 소비주의가 만들어낸 ‘오물 신’ 캐릭터를 창조했고 ‘벼랑 위의 포뇨’(2008)는 쓰나미가 덮친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차츰 변했다. 동화 같은 결말로 마무리 지었던 전작들과 달리 ‘모노노케 히메’(1997)가 현실적이고 냉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건 그가 마음의 파동을 겪었기 때문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가 ‘붉은 돼지’(1992)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뒤 이를 번복하고 내놓은 작품이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결정적이었다. ‘붉은 돼지’의 배경이 된 아드리아해 마을이 폐허가 된 모습을 보고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어쩌면 인간이 스스로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야자키는 이후에도 다시 한번 은퇴 선언을 뒤집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연출했다. 영화에선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됐는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담배를 문 채 커피를 내리며 씁쓸하게 혼잣말하는 미야자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우린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그게 감독의 일이야.”
어쩌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감독이 인류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서 만든 작품일지 모른다. 이 영화가 건네는 메시지는 제목만큼이나 직설적이다. 우리 세대는 이제 끝난 듯한데, 다음 세대인 너희들도 똑같은 실수를 할 것이냐고 영화는 묻는다.
![]() 다큐멘터리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
최근 챗GPT가 몇 초만에 ‘지브리풍’으로 뚝딱 그려준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내거는 유행을 두고 일부 예술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다큐멘터리 속 지브리 작업실을 본다면 이런 비판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 같다.
노병하 기자·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