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핵시설 기습공격… 중동정세 ‘시계제로’
‘2주 시한’ 언급후 이틀만에
이란 지도부 굴복 시도한 듯
이란 보복 나서면 확전 가능
이란 지도부 굴복 시도한 듯
이란 보복 나서면 확전 가능
2025년 06월 22일(일) 13:50 |
![]()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포르도와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의 3개 핵 시설에 대한 매우 성공적인 공격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친(親)트럼프 보수매체 폭스뉴스는 이란 핵프로그램의 심장부로 꼽히는 포르도 핵시설에 총 6발의 벙커버스터가 투하됐으며, 여타 핵시설에도 약 30발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이 발사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평화의 시기가 왔다”고 주장하면서 “이란은 이제 전쟁을 끝내는데 동의해야만 한다”고 적었다.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공습을 계기로 새로운 외교가 시작되길 희망하며, 현재로선 추가 폭격을 진행할 계획이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알려진 상황을 종합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부터 이란을 공격 중인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 무력개입에 나서되 ‘단발성이면서도 결정적인 폭격’으로 개입 정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공격이 확전으로 이어질지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도와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데 이어 작년 말 시리아의 친이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서 역내 영향력이 크게 약화하고 경제난마저 극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을 받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런 내우외환 속에서도 여전히 만만찮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처럼 대대적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선 굴복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국 미군기지를 공격하거나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5%가 지나는 ‘세계의 에너지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보복에 나설 경우 미국의 추가 군사개입이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크다.
자칫 지상군을 동원할 상황이 된다면 과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한 수렁이 재연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기간 막대한 전비를 써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으나 침공 빌미가 됐던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지 못했고, 권력 공백을 틈타 준동한 무장단체들과의 싸움에 피와 돈을 쏟아붓다가 2011년 군을 철수시켰다.
이에 앞서 2001년에는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역시 20년 만인 2021년 쫓겨나다시피 철군했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내전이 촉발한 리비아에 다른 서방국들과 함께 개입해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을 때는 리비아 전체가 각종 무장세력이 난립하는 무법지대로 전락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미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전쟁으로 이란내 친서방·온건파의 입지가 더욱 위축되는 등 대안세력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들어 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정권이 붕괴하면 이란이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무정부 상태에 빠지거나 더 강경한 세력이 득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편을 들어 분쟁에 개입한 이번 결정은 미국이 고수해 온 ‘중동의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 이미지를 훼손하고 반미 정서를 조장하는 것은 물론 우방들과의 신뢰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페르시아만 주변의 친미 성향 아랍국가들은 중동 전역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며 군사개입을 만류해 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겉으론 ‘2주’의 말미를 언급하고서 이틀만에 비밀리에 폭격기를 띄웠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대독한 성명에서 “(이란을 공격)할지 안 할지를 향후 2주 이내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는데, 폭격이 이뤄진 건 그로부터 불과 이틀여만이었다.
이란 산악지대 지하 깊이 위치한 포르도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초대형 벙커버스터 GBU-57을 탑재할 수 있는 미국의 유일한 군용기인 B-2의 순항속도가 마하 0.85(약 시속 1천49㎞)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공격명령을 내리는데는 만 이틀도 걸리지 않았을 수 있다.
페르시아만 주변국들은 이란 내 핵시설 파괴시 방사성 물질이 자국에 날아오거나 정권 붕괴로 난민이 대량으로 몰러오는 사태를 우려해 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과 최단 거리가 1천㎞에 이르는 데다 사이에 시리아·이라크 등 다른 나라가 있어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작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미국 유권자 과반은 이란 무력개입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에 이란 핵시설 폭격을 지시했다.
정유철 기자·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