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한국인 아닌가요” 소비쿠폰 제외된 고려인 눈물
결혼이민·영주권·난민 등은 지급
정부 “내국인 기준…형평성 고려”
“같은 한민족인데” 아쉬움 토로
"공동체로 보는 정책 전환 필요"
정부 “내국인 기준…형평성 고려”
“같은 한민족인데” 아쉬움 토로
"공동체로 보는 정책 전환 필요"
2025년 07월 09일(수) 18:40 |
![]()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내 홍범도공원에서 고려인들이 홍범도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정성현 기자 |
광주광역시 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는 정부 정책에서 거듭 배제되는 고려인 동포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의 우려는 오는 21일부터 시작되는 이재명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에서도 반복됐다.
정부는 이번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 결혼이민자·영주권자·난민인정자 등 일부 외국인을 포함했다. 그러나 재외동포(F-4) 비자 소지자와 단기체류 외국인은 제외돼, 광주 고려인 동포 다수가 혜택에서 배제됐다.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는 약 7000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결혼이민 등을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재외동포 비자나 단기체류 비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일부는 6개월마다 체류자격을 갱신해야 하는 임시 체류자 신분이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급히 입국한 고려인도 적지 않지만, 난민 인정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신조야 대표는 “한 집 걸러 한 명은 전쟁 때문에 모든 걸 놓고 들어왔다. 그래도 선조의 고향 땅이니 정착하려 애쓰는 분들이 많다”며 “이번 소비쿠폰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아쉬웠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도 이 땅에서 일하고 소비하는 이웃이다”고 말했다.
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소비쿠폰 지급 기준은 주민등록상 내국인으로, 소득·지역에 따라 15만~52만원까지 차등 지급된다. 예산 범위와 행정 효율성을 고려해 지급 기준을 정했다. 외국인까지 포함할 경우 행정 혼선과 형평성 논란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고려인마을 주민 다수는 제조·건설·농장 등에서 일하며 원천징수 방식으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있다. 언어·문화 장벽으로 인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전쟁 트라우마로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복지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돼 정착 의지를 잃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고려인마을 상담소를 운영하는 이천영 목사는 “차등 지급되는 25만~50만원은 이곳 주민들에겐 매우 큰 돈”이라며 “같이 살아가는 동포들이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매번 정책에서 제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만일 지원금을 받았다면 상당수가 ‘사회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다’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인마을 동행위원은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 중 약 900명은 러-우 전쟁을 피해 입국했다. 조국의 정을 믿고 돌아왔지만 제도적 배제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며 “정부는 홍범도 장군을 기리며 고려인의 긍지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정책에서는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비자 유형에 따른 차등 지원과 지자체 조례 마련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고려인을 단순한 외국 국적자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는 “피란 고려인은 한국과 초국적 관계를 맺은 동포로 단순한 외국 국적 난민으로만 보기 어렵다”며 “이들은 가족과 재결합하며 한국에 머물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이를 고려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채 국제이주문화연구소 부대표는 “현행 재외동포법은 해외 거주 동포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국내에 거주하는 고려인이나 조선족 등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번 정책은 추경 일정에 따른 행정적 제약이 있었겠지만, 앞으로는 정부와 지자체가 조례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이 같은 배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적만으로 한민족 정체성을 나누는 방식은 오히려 공동체 내 차별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박병규 광주 광산구청장과 고려인 동포, 주민 등이 광주 광산구 홍범도공원에서 고려인마을 주최로 열린 3·1절 만세운동 재연행사에서 만세 삼창을 외치고 있다. 나건호 기자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