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CEO·강진원>‘쌀’ 한 톨에 담긴 기억과 전략
강진원 강진군수
2025년 07월 10일(목) 13:46 |
![]() 강진원 강진군수 |
2025년의 들녘도 어느덧 모내기를 마쳤다. 논은 다시 물거울이 되어 하늘을 품고, 땅은 올해의 쌀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올봄, 인접국 일본에서는 전례 없는 ‘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레이와 쌀 소동’으로 불리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가격 폭등이 아니라, 기후변화, 장기적인 감산 정책, 투기성 사재기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겹친 복합 위기다. 1년 새 쌀값은 두 배로 치솟았고, 슈퍼마켓에는 쌀 판매를 제한하는 안내문까지 등장했다. 시민들의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생활인구’의 급증이다. 2025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3687만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이 소비한 초밥, 오니기리 등 쌀을 기반으로 한 음식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본 내 쌀 수급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다. 관광객은 단순한 체류자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실제 소비자이자 식량수급 구조의 일원인 셈이다.
이 현상은 우리가 오래도록 간과해 온 사실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식량은 생산만이 아니라 ‘소비’의 구조까지 고려해야 지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강진군의 ‘생활인구’ 증대 전략은 시사점을 던진다. 2025년 강진군은 ‘반값여행’ 정책으로 대규모 관광객을 유입시켰고, 상주인구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도 생활인구는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관광객이 아니라, 지역 상권과 농촌경제에 실제로 소비와 순환을 일으키는 ‘이동하는 생활자’였다. 일본의 사례는 이러한 전략이 단지 실험이 아닌, 국제적 흐름 속에서 유효한 대응임을 증명한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강진에서 생산된 쌀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정한 물, 해풍, 그리고 농민들의 정성으로 키워낸 고품질 강진쌀은 일본의 까다로운 검역 절차를 통과해 현지 식탁에 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강진군과 농협의 전략적인 농업 정책과 투자 덕분이다.
강진군과 농협은 인근 지자체보다 40㎏ 한 가마당 4500원이 높은 가격으로 쌀을 수매하며,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제공했다. 이러한 고수매가 정책은 농가의 자부심을 높이는 동시에, 품질 경쟁력 확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강진군농협 RPC(미곡종합처리장)는 약 100억 원을 투입해 시설 현대화를 이뤘다. 이 과정에서 453종의 잔류농약 검사가 가능한 시스템과 더불어, 일본 검역당국이 요구하는 카드뮴 등 3가지 항목을 모두 충족시키는 인프라를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일본 수출의 문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국내 식품 기업과는 즉석밥 가공용 쌀 납품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해 새로운 판로를 확보했다. 강진군의 이 같은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농업정책은 농가 소득 증대는 물론, 지역 농업의 산업적 가치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한때 “농사 지어선 못 먹고 산다”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이제 농업은 세계 시장과 연결된 고부가가치 전략산업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강진쌀의 일본 수출은 그 전환점에 선 상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쌀은 단지 우리의 주식이 아니다. 그것은 식량안보의 뿌리이자,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노동과 기억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논은 생태계의 허파이고, 기후위기 최전선에서 인류의 균형을 지탱하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 오늘도 고개 숙여 모를 심는 농부의 얼굴이 비친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인사드릴 차례다. “모내기를 마친 농부 여러분, 고맙습니다. 당신의 땀으로 자란 한 톨 한 톨이 우리의 밥이 되고, 기억이 되고, 미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