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소리로 “엄매!” 하고 소리치면서 이 세상으로 왔다. 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만, 생전의 생모께서 늘 해주신 얘기다. 1897년생 아버지 예순여섯에 얻은 첫아들, 내 탄생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셨을까?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 하늘에서 떨어졌냐 땅에서 솟았냐 했다. 어머니는 자그마한 땅뙈기를 받는 조건으로 품은 아들을 핏덩이로 아버지께 넘긴 씨받이셨다. 역설적으로 전통시대의 악습이 베이비부머 시대의 끝자락까지 남아있던 탓에 나는 이 세상에 올 수 있었다. 강물처럼 쏟아져 내린 양수의 세례를 받고 공기 호흡을 위한 첫울...
편집에디터 2022.12.29 14:27문화분권의 시대, 지역자치의 시대, 지역학의 시대라는 화두가 제기된 지 매우 오래되었다. 그 기간이 숙성된 만큼 지역의 독창적이고 특별한 문화가 존중받거나 대우받고 있는 것일까? 기간은 오래되었다지만 그다지 숙성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지역자치도 일어나고 지역분권도 일정 부분 구축되며, 문화분권 차원의 지역학도 우후죽순 범람하는 모양새다.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을 하는 과정일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바꾸어 말해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제주도...
편집에디터2022.12.22 16:21전북 부안군 적벽강에 죽막동 제사유적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의 해신(海神) 관련 제사터다. 19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수성당(水城堂)을 수성당(水聖堂)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노천제사가 아닌 실내 제사 즉 당집 안에서 제사를 지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단서가 이것이다. 신격(神格)은 '수성할미' 혹은 '개양할미'다. 절벽 위 평탄면에는 3세기 후반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퇴적되어 있다. 고군산열도와 왕등도, 비안도 등 먼바다를 내다보기 좋은 위치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고고학적 유물이나 역사적 연원보...
편집에디터2022.12.15 15:24본 지면에 K-FOOD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선언적으로 남도음식이 K-FOOD의 원천이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왜, 무엇이, 어떻게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미처 말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몇 차례 나누어 이를 다뤄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지역의 어느 음식이라고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음식에 저장된 시대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를 둘러싼 문화적 함의와 관련된 것이다. 김재경은 '소설에 나타난 음식과 권력의 문화기호학'이란 글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음식은 무엇을 어디서 어떻...
편집에디터2022.12.08 17:35선녀는 하늘에서 베를 짠다. 연오랑의 짝꿍 세오녀가 그랬고 견우의 짝꿍 직녀도 그랬다. 오죽하면 이름을 직녀(織女) 곧 베를 짜는 여자라고 했을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금가락지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다. 구름 위에 노닐기가 무료하면 가끔 땅으로 내려와 놀다 떨어뜨리기도 한다. 지리산 노고단의 옥녀도 그리했다 하니 전국의 수많은 옥녀봉은 선녀들이 내려와 좌정한 바위일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뜨린 것인지 노고단 형제봉에서 떨어뜨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을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한다. 산과 연못이...
편집에디터2022.12.01 15:52고풀이는 남도의 씻김굿에서 연행되는 후반부 거리 중의 하나다. 본 지면을 통해 두어 번 고풀이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소개하였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대립에 대한 내 마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대하며 다시 고풀이를 소환할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맹골도를 바라보는 해안에 흙집 짓고 살던 소설가 고 곽의진은 세월호의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뜰 일을 하다 쓰러졌긴 했지만 나는 그 죽음이 세월호의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 나와 나누었던 카톡에 절절했던 내용이 남아 있다. 의무와 책임, 풀어야 할 과제들 말이다. 어찌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던 우리에게 세월호가 얹어준 무게가 그러했다. 곽의진과 내가 진도사람이어서 그랬고 동시대인이어서 그랬다. 세월호에 희생당한 아이들이 바로 내 자식이며, 참살당한 이들이 내 가족이나 다름없기에 그랬다...
편집에디터2022.11.24 16:38지난 칼럼 를 통해 지명가요의 전통과 변천을 톺아본 바 있다. 다시 제기할 문제는 호남의 각 지역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른바 중의법(重義法)을 차용한 이유랄까, 그렇게 시를 짓고 노래했던 남도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읽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발생하여 유행하던 지명가사(地名歌辭)가 호남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란 점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위백규의 여도시(輿圖詩)에서는 경기, 호서, 해서, 관서, 관동, 관북, 영남, 호남을 골고루 노래했다. 문제는 문학 장르로서의 가사(歌辭)를 넘고 여러 노래...
편집에디터2022.11.17 17:20함평의 가리내패와 사당패에 대하여 "이때에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 옥천, 함평 월앙산(月仰山) 가리내패가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 삼랑 그 근방들 가느라고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의 관을 보고 걸사(乞士, 거사의 본래 용어)들이 절을 하여, '소사 문안이오, 소사 문안이오~" 신재효가 정리한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이라고도 한다)에서 사당패가 전국 유랑을 하며 재능을 파는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함평의 가리내패? 무슨 연희를 하던 집단이었을까? 이어지는 사설에 ...
편집에디터2022.11.10 16:37"부루단지는 부리단지, 부리동우, 부릿동우, 부룻단지, 부루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조상신을 모시는 항아리라는 뜻으로 조상단지, 신줏단지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와 연관이 있을 법한 명칭으로 세존단지, 시준단지, 제석단지, 제석오가리라 부르는 곳도 있다. 단지 안에 곡식을 담아 주로 대청에 모신다. 대청이 없는 집에서는 안방의 농 위에 모시기도 하고 선반을 따로 만들어 시렁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특별히 두서 말들이 큰 독에다 모시는 경우에는 부엌에 모신다." 의 '부루단지'에 대한 설명이다. 내 고향 진도, 옛 우리 집에서는...
편집에디터2022.11.03 17:05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검은닭을 길렀는지는 알 수 없다. 동남아시아 계통이나 일본 계통의 오골계로 오해받던 시절도 있었다. 지양미가 보고한 '봉황과 긴꼬리닭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고양시 긴꼬리닭 3계통, 축산연구소의 재래닭 3계통, 연산 오계, 제주도의 재래닭, 축산연구소 레그혼, 로드아일랜드 및 코니쉬 등 11개 집단 449수를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분석하였는데, 긴꼬리닭과 연산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과 93% 확률로 동일한 그룹임이 확인되었다. 긴꼬리닭을 포함하여 연산 화악리 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임을 알려주는 실험이었던 셈이다. 문헌상으로 보면, 고려 시대 이달충(1309~1385)의 시에 등장하기도 하고, 조선 시대 문헌에는 다수 등장한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아주 오랜 시기부터 검은닭이 사육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월에 논산에서 열리는 연산...
편집에디터2022.10.27 15:37판소리 창본집(김봉호)에 나오는 호남 지명 2018년 8월 10일 본 지면에 를 소개했다. 20세기 초 임방울이 불러 국민 유행가가 된 노래다. 1931년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된 것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930년대 취입된 유성기 음반에는 임방울, 정정렬, 하농주, 김금암 등이 녹음하였고, 해방 후에는 박동진, 신평일 등이 취입하였다. 필사본이나 이본들이 많으므로 노랫말이 균일하지 않다. 의 노랫말은 중의법(重義法)으로 구성되었다. 해당 지명에 단어의 본뜻을 입힌 것이다. 김봉호가 쓴 '판소리창본집'을 참고한다. 고창(高敞)은 지세가 높고 탁 트인다는 뜻이고, 익산(益山)은 많은 산, 만경(萬頃)은 수면이 아주 너른 것을 뜻한다. 모든 단어나 어구가 그렇다. 중의는 두세 가지 의미를 담는 어구라는 뜻이다. 대부분 댓구 형식이다. 는 부단히 변해왔다. 신재효본 에 와서야 ...
편집에디터2022.10.20 16:02덕흥리 무녕왕릉 고분의 인면조 검은닭 오계(烏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烏)는 까마귀라는 뜻 외에 검은색이라는 뜻이 있다. 오(烏)에 단지 까마귀의 뜻만 있다면 오계(烏鷄)나 오골계(烏骨鷄)도 '까마귀닭'이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부르지 않는다. 대신 삼족오는 세 발 달린 까마귀로 해석한다. 같은 오(烏)자를 쓰는데 왜 삼족오(三足烏)는 까마귀로만 인식할까?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다. 삼족(三足)은 다리가 셋이라는 뜻이고 오(烏)는 까마귀를 말한다. 다리가 셋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고대의 삼족기(三足器)가 단서의 일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솥(鼎)이다. 고대 중국, 양쪽에 귀를 달고 있는 세 발 솥 곧 삼족정(三足鼎)이 오늘날까지 솥으로 통칭된다. 남중국이나 베트남 권역에서 동고(銅鼓, 동으로 만든 북)를 왕실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듯이, 고대 중국에서...
편집에디터2022.10.13 17:07판소리 문법은 올려잡아 300여 년 전 생성되었다. 판소리라는 이름은 100여 년 전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판소리의 총체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확정되었다. 지난 칼럼에서 다룬 판소리 내력이다. 이제 판소리를 '소리'답게 만드는 두 가지 기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 두 가지 기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탁월하다. 판소리를 이면(裏面)의 소리로 만들어낸 원천기술이다. 하나는 리듬을 일정한 패턴으로 범주화한 기술이다. 다른 하나는 선율을 일정한 방식으로 구조화한 기술이다. 전자의 기술을 장단(長短)이라 한다. 후자...
편집에디터2022.10.06 14:15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는 K-Food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우리말 '한식'을 영역한 것이 'K-Food'이다. 하지만 한글과 영문의 결이 좀 달라 보인다. 남도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한식(韓食)'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나 식사를 말하는 것인데, 지금 논의되는 K-Food를 딱히 그렇게 정의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음식문화가 식료에 한정되거나 시대에 묶여있지 않고 시절 따라 기호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서구화된 우리의 식단이 그렇고 세계인의 기호 음식이 된 커피 사례가 그렇다. 주지하듯이 K-Food가 부상...
편집에디터2022.09.29 16:312010. 추자도 조기축제에서 풍어제 주관하는 송순단 무녀 판소리란 작명은 언제 어디서 누가 한 것일까? 판소리의 생성은 영조 30년(1754)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를 기점으로 잡는다. 250여 년, 당시 이 노래가 존재했었으니 더 올려잡아 300년 남짓 된 셈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지금의 호명인 '판소리'가 있었던 게 아니다. 타령, 창(唱), 잡가(雜歌), 소리, 광대소리, 창악(唱樂), 극가(劇歌), 가곡(歌曲), 창극조(唱劇調) 등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 중에서 어떤 이름이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나타난 것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1940년 조선일보 출판)이다. 올려잡아도 100여 년 밖에 안된다. 더구나 판소리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다. 정노식이 왜 '조선판소리사'라고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라. 판소리 만정(김...
편집에디터2022.09.22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