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가장 아픈 손가락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아픈 역사입니다." 김부겸 국무총리의 말이다. 김 총리는 지난 19일 여수에서 열린 여순사건 73주기 합동위령제 겸 추념식에서 이같이 말하고,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추념식은 지난 6월 여순사건특별법(여수·순천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처음이자, 정부가 주관한 첫 번째 행사였다. 여순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다. 처음엔 14연대 군인들의 반란이었다고,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다. 지금은 여순사건, 여순항쟁 등으로 ...
편집에디터2021.10.21 16:29내평마을 입구에 세워진 마을 표지석. 마을의 지명 유래까지 개겨져 있다. 이돈삼 어렸을 때, 누비이불을 덮고 살았다. 누비이불은 푹신했다. 추운 겨울밤도 거뜬했다. 이불이 무거운 게 흠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누비이불은 형제들의 도화지였다. 돌아가면서 지도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지도까지 곧잘 그렸다. 하지만 칭찬을 받지 못했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동냥을 나가야 했다. 그 시절, 목화가 지천이었다. 집집마다 목화를 심었다. 딸자식이 많은 집은 더 심었다. 당시 목화솜을 넣은 이불은 첫손가락에 꼽는 혼수품이었다. 목화는 동네 아이들에게 군것질거리였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다래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다래 맛은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쩍 벌어진 하얀 솜꽃도 아름다웠다. 목화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은 것도 그때였다. '우리 처음 만난...
편집에디터2021.10.07 17:16공동우물 '장수정'의 표지석. 상몽탄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어약연비(魚躍鳶飛). 물고기가 물에서 날뛰고 솔개가 하늘을 난다는, 만물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 즉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산강변이 그랬다. 물고기가 강물에서 솟아오르고, 하늘엔 새들이 날고 있었다. 아주 평온한 강변 풍경이다. 물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숭어가 강변의 정적을 깰 뿐이었다. 물결의 파장이 잔잔한 강물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강변 둔치를 연녹색으로 덮은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도 눈길을 끈다. 고양이나 살쾡이가 속이 불편할 때 뜯어먹는다는 풀이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로도 불린다. 겉보기에 솜털 같지만 따끔한 가시가 있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골탕 먹일 때 썼다는 이야기가 서려 있다. 부인성 질환과 피부병, 소화불량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강변...
편집에디터2021.09.23 16:44고산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고산서원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장안만목(長安萬目) 불여장성일목(不如長城一目). '장안(서울)에 있는 1만 개의 눈이 장성에 있는 하나의 눈만 못하다'는 말이다. 청나라 사신이 낸 문제를, 학식 높다고 뽐내던 서울사람들이 풀지 못했다. 대신, 장성에 사는 애꾸눈의 기정진이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전북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에서 태어난 기정진(1798~1879)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한쪽 시력을 잃었다. 기정진은 7살 때 시를 지으면서 '천재'로 불렸다. 고산마을 풍경. 마을이 불태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돈삼 노사 기정진은 1862년 국정의 폐해를 바로잡을 것을 역설한 상소 '임술의책(壬戌擬策)'을 올렸다.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을 다섯 가지 개혁안을 담았다. 사대부의 도덕적 해이와 특권의식도 비판했다. 기정...
편집에디터2021.09.09 16:45고막마을 표지석. 마을의 상징이 된 돌다리가 마을이름과 어우러져 있다. 이돈삼 "너, 고막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그렇게 말 안 들으면, 고막다리 밑에다 버려 버린다." "웬수 같은 ×, 다리 밑에 있는 니 엄마한테 다시 가라." 중장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다. 옛날 어른들은 그랬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거나, 심하게 울면 '다리 밑'을 들먹였다. 그 말을 자주 들은 한 아이는, 진짜 보따리를 싸 들고 다리 밑으로 가려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옛 추억 속의 이야기다. 고막대사를 등장시킨 돌다리 벽화. 고막마을회관 앞 벽에 그려져 있다. 이돈삼 고막마을 고막천의 팽나무. 수령 2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돈삼 그 이야기 속의 다리다. 함평 고막천 석교, 이른바 '고막다리'다. 장성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월야·나산을 거쳐 ...
편집에디터2021.08.26 16:32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 못 가고, 열흘 붉은 꽃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분홍 꽃으로 100일 동안 유혹하는 꽃이 있다. 꽃 한 송이가 100일 동안 활짝 피어있는 건 아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배롱나무꽃이다. 배롱나무꽃 핀 풍경은 명옥헌원림이 압권이다. 붉은 꽃너울이 누정 앞 연못에 비쳐 반영되는 풍경도 매혹적이다. 하여, 여기 배롱나무꽃은 두 번 봐야 한다. 꽃이 활짝 피어 꽃너울을 이룰 때, 그리고 꽃잎이 떨어져 연못에 가득할 때다. 명옥헌. 원림을 한눈에 내...
편집에디터2021.08.12 15:31한센인 추모 조형물. 당시 한센인들의 고된 노동을 표현하고 있다. 이돈삼 다섯 마리의 말 조형물. 간척으로 하나 된 5개 마을을 가리킨다. 이돈삼 농지를 개간하면, 그 농지를 주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다면 어떨까? 정확히 표현해서, 간척을 하면 그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면….그것도 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이 그랬다. 소록도 한센인들의 얘기다. 한센인들은 간척을 하면 소록도 밖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2년 동안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치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땅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났다. 한센인들의 한(恨)으로 남았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덕면 오마리에 오마간척 한센인 추모공원이 있다. 소록도에서 약 12㎞ 떨어진 곳이다. 한센인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오마도 간척지와 소록도가 한눈에 보이는...
편집에디터2021.07.29 14:57손죽마을 풍경.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선 마을과 돌담이 아름답다. 이돈삼 마을에서 본 삼각산 풍경. 바위봉우리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다. 이돈삼 손죽도는 거문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지리적으로는 고흥에 가깝다. 손죽도는 본디 고흥 땅이었다. 1896년 돌산군이 새로 생기면서 관할이 바뀌었다. 돌산군이 여수로 편입되면서, 손죽도도 여수의 품에 안겼다. 여수바다가 품은 353개 섬 가운데 하나다. 손죽도로 가는 배편은 넉넉하지 않다. 여수항 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로 가는 쾌속선을 타야 한다. 이 배가 고흥 외나로도 축정항을 거쳐 손죽도에 들른다. 고흥 녹동신항에서 차도선형 여객선도 오간다. 손죽도에는 주민등록상 130가구 190여 명이 살고 있다. 실제는 100여 명이 산다. 마을 앞, 유려하게 구부러진 포구에 고운 모래가 깔려있다....
편집에디터2021.07.15 15:05모정마을-겉보기에 전형적인 농촌이다. 하지만 속은 전통이 깊은 마을이다. 이돈삼 나도 모르게 '순간이동'을 한다. 어렸을 때, 수박 서리의 현장으로. 달빛마저도 흐릿한 여름날 밤이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산자락에 있는 수박밭으로 향했다. 밭이랑을 따라 슬금슬금 기어가서, 수박 한 덩이씩 얼른 따서 들고 오는 것이다. 크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 숙련이 된 덕이었다. 혹여 밭주인이 눈치를 채고 "어떤 놈들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들 땐 줄행랑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박 한 덩이를 옆구리에 끼고 도망쳐 나올 때엔 스릴마저 느껴졌다. 그 수박은 더 맛있었다. 꿀맛, 그것이었다. 수박과 참외 서리뿐 아니다. 깊은 밤에 토끼와 닭·오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왔던 기억도 소환한다. '거사'를 함께 했던 일행에는 밭이나 동물의 주인집 아들이 끼어있기 일쑤였다. 수박 서리를...
편집에디터2021.07.01 16:44난장기-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다. 이돈삼 바닷가의 숲으로 간다. 영광 진성마을이다.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와 법성리를 합해서 이름 붙였다. 법성면에 있는 여러 마을 가운데 가장 컸다. 옛 법성진의 치소도 106년(1789∼1895) 동안 자리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군사의 중심지였다. 지난 6월 14일이 음력 5월 5일 단오였다. 옛날에 단오는 설날, 추석, 한식, 정월대보름과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큰 행사였다. 그 가운데서도 영광 법성포는, 동해안 강릉과 함께 단오제의 전통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돼 있다. 법성포 단오제는 조선 중기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법성포 단오제가 열릴 때는 조기 떼가 영광 칠산바다로 알을 낳으려고 찾아드는 즈음이었다. 조기가 많이 잡히면서 파시가 열렸다. 어부들 손에도 돈뭉치가 쥐어졌다. 단오제의 규모...
편집에디터2021.06.17 15:06나산마을 풍경. 이돈삼 담양엔 누정이 많다. 조선시대 민간정원의 백미로 꼽히는 소쇄원이 맨 앞자리에 선다. 식영정, 송강정, 독수정, 면앙정도 있다. 의리와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던 조선의 사림들은 이 누정에서 주옥같은 시와 글을 지었다. '가사문학(歌辭文學)'이다. 자연스레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이 됐다. 담양의 누정 가운데 관어정(觀魚亭)이 있다. 식영정, 송강정에 비해 지명도는 낮지만, 손에 꼽히는 누정이다. 이른바 '담양 10정자(亭子)'에 속한다. 10정자는 담양군이 지난 2011년 선정했다. 1945년 해방 이전에 세워진 것 가운데 현존하는 정자를 대상으로 주민과 공무원,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발표했다. 담양 10정자에는 관어정 외에도 식영정, 소쇄원 제월당·광풍각, 면앙정, 명옥헌, 송강정, 독수정, 상월정, 연계정, 남극루가 포함됐...
편집에디터2021.06.03 15:22백운산 성불계곡. 하조마을 앞으로 흐르는 명물 계곡이다. 이돈삼 백운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이 도솔봉과 형제봉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성불계곡과 반월계곡의 물줄기도 시원하게 흐른다. 연녹색의 숲에 눈이 시원해진다. 마음속 깊은 데까지도 청량해진다.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하조마을이다. 마을의 형세가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한다. 예전엔 다랑이 논이 많았다. '산달뱅이마을'로도 불린다. 산달뱅이는 다랑이를 일컫는 지역말이다.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장수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가을엔 백운산 단풍을 보려는 발길이 줄을 잇는다. 겨울 산행객들도 많다. 새봄에는 고로쇠 수액을 찾아온다. 사철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골이다. 마을에 둘레길도 있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면서 만나는...
편집에디터2021.05.20 16:20변이중의 충절을 기리는 봉암서원. 변이중을 주향, 윤진 변윤중 변경윤 변덕윤 변휴 변치명을 종향으로 모시고 있다.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때 3대 전투로 행주대첩을 꼽는다. 1593년 2월 12일 권율 장군이 이끈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다. 부녀자들이 치마를 이용해 돌을 옮기고, 그 돌로 일본군과 투석전을 벌이며 이겼다는 싸움이다. '행주치마'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선 투석전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했을까? 사람이 던지는 돌팔매가 조총보다 더 효율적이었다는 말인가? 군인의 수도 일본군이 조선군보다 10배 남짓 많았다는데…. 자료에 의하면 당시 조선군은 2300여 명, 일본군은 3만여 명이었다. 행주산성은 돌로 쌓은 튼튼한 성도 아니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한강변 구릉...
편집에디터2021.05.06 16:37해동문화예술촌 전경. 옛 주조장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담양의 도시재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곡창고도, 정미소도, 주조장도, 공판장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담빛예술창고와 해동문화예술촌이 담양의 도시재생을 대표한다. 담빛예술창고는 정부양곡 보관창고에 예술의 옷을 입혔다. 복합전시실, 문예카페, 문화체험실로 꾸며져 있다. 해동문화예술촌은 항아리에서 뽀글뽀글 술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던 술공장이었다. 오래되고 낡아서 쓰지 않던 해동주조장이 예술공간으로 부활한 것이다. 부지 6600㎡에 이른다. 전시 공간은 주(主)·조(造)·장(場) 3개 테마로 이뤄져 있다. 갤러리와 아카이브실, 교육실도 갖추고 있다. 맛이 다른 예술마을이다. 해동문화예술촌을 찾아간다. 실내전시관. 해동주조장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막걸리, 역사와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막걸리와 술 이야기 등을 보여준다 ...
편집에디터2021.04.22 12:54삼학도 공원마당에 흐드러진 튤립.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 봄꽃의 향연이 계속되고 있다. 주연이 산수유꽃과 매화, 벚꽃에서 배꽃, 복사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꽃들은 저마다 애틋한 사연과 함께 꽃말을 지니고 있다. 샛노란 개나리는 희망, 순백의 백합은 순결,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꽃말로 삼고 있다. 같은 꽃이라도,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다른 것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튤립이다. 튤립의 꽃말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도 사랑 나름이다. 빨강색 튤립의 꽃말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고백이다. 보라색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빨강과 보라색 튤립의 사랑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다른 색깔의 꽃말은 아니다. 노란색은 헛되거나 가망 없는 사랑을 가리킨다. 하얀색은 실연, 검정색 튤립은 짝사랑을 꽃말로 지니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는 튤립이라면 노란색과 흰색, ...
편집에디터2021.04.08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