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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 5ㆍ18 비밀편지' 전달 어떻게<br>軍공문에 끼워 헬기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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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 5ㆍ18 비밀편지' 전달 어떻게<br>軍공문에 끼워 헬기로 보내

마지막 건넨 장용복 군종신부 \"가장 먼저 광주 보듬은 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5ㆍ18 광주민중항쟁 기간 동안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86)에게 건넨 '5ㆍ18비밀편지'는 당시 육군본부와 상무대 군종신부 등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추기경의 비밀편지가 윤 대주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당시 상무대 군종신부였던 장용복 신부(66)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봤다. 장 신부는 지난해 8월 은퇴해 현재 호주에 체류하고 있으며 인터뷰는 18일 국제전화를 통해 이뤄졌다.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광주대교구장을 맡고 있는 윤공희 대주교에게 전달하라며 편지를 건넨 것은 1980년 5월23일께로 추정된다. 당시 육군본부 군종신부(중령)였던 이억민 신부(1996년 작고)는 이날 헬기를 이용해 상무대에 도착했다.

시민군에 밀린 계엄군이 광주외곽을 차단했고 마땅한 교통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엄군이 주둔하고 있던 상무대에 도착한 이 신부는 상무대 군종신부였던 장용복 신부에게 편지를 전했다. 장 신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이 윤 대주교에게 보낸 편지와 수표 1000만원, 또다른 편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그림1중앙>
이 신부가 윤 대주교에 전달해달라며 전했던 또다른 편지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의 메시지. 육군본부가 헬기까지 제공하며 이 신부를 광주에 내려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메시지 전달 방법을 고민하던 추기경은 이 신부가 광주를 찾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급히 편지와 수표를 보냈다.

하지만 편지는 이틀 동안이나 윤 대주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 동구 학동에 머물고 있던 윤 대주교와 접촉할 길이 마땅치 않았다.

장 신부는 "이틀 동안 편지를 전달하지 못하자 육군본부에서 '편지를 보냈는데 왜 답이 없느냐'는 재촉 전화가 자주 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머지 1통의 편지는 참모총장이 윤 대주교에게 보낸 메시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편지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참모총장이 윤 대주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달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장 신부는 조비오 신부와 전화통화를 통해 대책을 논의했다. 두 신부는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던 서구 쌍촌동 국군통합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편지가 광주에 도착한지 이틀만인 80년 5월25일이었다.

장 신부는 "당시 군인신분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어렵사리 약속을 잡고 국군통합병원까지 걸어갔다. 장갑차 안에서 조 신부를 기다린 뒤 편지를 전했다"고 했다.

윤공희 대주교도 "남동성당에서 추기경님의 메시지를 받아올 방법을 조비오 신부 및 오병문 전남대 교수와 논의해 직접 상무대에 가서 받아올까 했으나 장 신부 등이 회신을 요구하는 내용이 아닐 것이라고 해 일단 맡아두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편지를 전달받고 정말 감동을 받았다. 광주가 힘들었던 시기 가장 먼저 나선 분이 김 추기경님이었다. 호주에서 선종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는 장 신부는 "2005년 목포를 찾아 특강을 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선한데 돌아가셨다고 하니 안타깝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강현석 기자 hskang@jnilbo.com